하나님을 위해 열심이 특심한 자의 모순 > 칼럼

사이트 내 전체검색

칼럼

하나님을 위해 열심이 특심한 자의 모순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하나님을 위해 열심이 특심한 자의 모순


하나님을 위해 열심 있는 자에 대해 공부하면서 생각한 것들을 적어본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열정을 가진 우리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그러한 열정도 하나님 앞에 적절한 시기에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열정도 과격한 열정으로 변하여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결과를 가져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첫 번째는 엘리야에 대한 생각이다.

엘리야의 스트레스가 무엇일까?

나는 그 원인을 이 성경 절에서 보았다.

열왕기상 19장에 하나님께서 그를 찾으실 때 두 번이나 대답한 그의 말이다.

"내가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특심한 자에게 스트레스는 얼마나 클까?

그것은 일종의 병적인 것이 아닐까?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자기 백성을 위해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모두 죽일 수 있는 열심.

그러나 자기 한 생명을 위해 도망가는 모순의 열정을 가진 자.

하나님에 대해 열심 있는 자에 대한 무서움을 느낀다.

자기 백성의 한 생명을 위로하시고 감싸시는 하나님이

그를 대적하는 자의 무수한 생명을 아랑곳 하지 않고 죽이시는 하나님이신가?

그런데 호렙산 굴에서 떨고 있는 엘리야의 스트레스를

하나님은 독특한 방법으로 치료하고 계신다. 

그 장 마지막 부분에 그 짐을 엘리사에게 넘겨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엘리야에게는 쉼이 필요하다.

어쩌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특심한 것도 조금 내려 놓아야하지 않을 까?


두 번째는 예레미야의 서기관 바룩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레미야 45장에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나온다.

그 때 바룩의 마음 상태를 여호와께서 간파한 것을 묘사한다.

"네가 일찍 말하기를 슬프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치 못하다 하도다."

여호와께서 바룩의 마음을 아시고 말씀하신다.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나?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

내가 모든 육체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바룩이 경영하려고 하는 대사가 무엇일까?

그 큰일(대사)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재앙을 모든 육체에 내리시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룩의 대사(큰일)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든지 유대 왕국에 내리시는 재앙을 막는 대사일 것이다.

그것이 백성을 회개시키던지, 무력으로 재앙을 막아보려고 하는 일이던지

바룩은 큰일을 도모하려고 뜻을 품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룩의 뜻을 꺾고 계신다.

"내가 재앙을 내릴 것이니 너는 그러한 대의를 품지 말라.

내가 네 생명만은 보호할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도대체 우리의 대사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의 대사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생각한다.

가끔 하나님은 우리로 일에 손을 놓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역사를 이루려고 하는 교만이 아닐까?

결국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위한 열정인 것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부족이 아닐까?


세 번째 이야기는 사울의 이야기이다.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저희 죽이기를 

꾀하였더라." (삼상 21장 2절)

사울이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기브온의 모든 족속을 죽이려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다윗은 이 핑계로 다시 사울의 왕자들을 죽게 내버려 둔다.

다윗은 자기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열심이 있는 자이다.

참 이상한 일은 열심이라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도 열정이 있다.


위의 모든 이야기들이 참으로 모순투성이 아닌가?

하나님을 위한 열심, 나라를 위한 열심, 자기의 대사의 경영을 위한 열심.

850명의 우상 숭배자의 선지자들을 모두 죽이는 여호와께 열심이 특심한 엘리야.

하나님의 역사를 막으려고 대사를 경영하고 있는 바룩의 열심. 

나라를 위한다는 민족정신으로 기브온 족속 모두를 죽이려는 사울의 열심.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를 죽이고자하는 바리새인들의 열정과 비슷하지 않는가?


아마도 우리에게는 그러한 큰 열정은 없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그러한 큰 열정을 원하지 않는다.

모든 열정도 적절한 시기에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또한 우리의 이웃을 위하여

영혼을 죽이기보다는 살리는 조그마한 열정을 가지고 싶다.

이것이 새해를 시작하는 나의 기도이다.

2011년 1월21일 아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