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로마의 도전(Rome's Challenge)" 제4회 - 기독교의 안식일 III, "가톨릭 미러"지 1893년 9월 16일자 사설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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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로마의 도전(Rome's Challenge)" 제4회 - 기독교의 안식일 III,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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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안식일  III

 

가톨릭 미러1893916일자 사설

 

            처음부터 살인한 자거짓의 아비인 악의 왕 사탄이 인류의 첫 모친 하와에게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리라라는 속임수로 하와의 야심을 자극하여 그녀의 눈을 뜨게 해 주겠다고 했을 때, 그의 행위는 그 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하와의 자손을 유혹하는데 사용된 그럴싸하고 대단히 성공적인 수많은 시도들 중 첫번 것에 불과했다. 하와처럼 그의 자손들은 너무 더디 깨닫는다. !  슬프게도 그의 유인책은 하와의 연약한 자녀들을 하나님과의 연합으로부터 꾀어내는데 큰 효험이 있다. 본 변론이 다루는 주제도 이 악한 왕의 상투적 술책으로부터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지난 삼세기 동안 불만과 야심으로 가득 찬 다수의 기독교인들에게 사탄은 하나의 새로운 이탈(離脫)”이 성공할 수 있다는 밝은 전망을 그럴 듯하게 제시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를 스승으로 여기는 것을 포기하고 오직 성경만을 그들의 새로운 스승(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취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영특한 악마는 자신의 책략이 눈부신 성공을 거둘 것을 예측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의 낙관적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모험을 실행하기 위해 사탄에게는 한 담대하고 탐험적인 정신을 소유한 인물이 필요했다. 머지않아 악의 왕 사탄은 이 모험을 위해 배도한 수도사 루터(Luther)가 적임자임을 발견했다. 루터는 자신과 자신의 주인이 아주 흡사하다는 것을 그의 탁상 담화(Table Talk)”1558년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 멜랑톤(Melanchthon)의 감수 하에 출판된 그의 저서들을 통해 증언하고 있다. 사탄과 루터 사이의 여러 차례에 걸친 담화의 내용은 루터가 자신을 향해 던진 증거물로 남아있다. 이 증거물들은 전적으로 신뢰할만하다. , 에덴동산에서 뱀이 이룩한 그 능수능란한 행적을 루터가 기독교계에서 성취하였던 것이다.4

 

            방황하는 저들에게 안내자를 보내주라.

            술수가 담대하고 속임수를 사사(師事)받은

            그의 모험적 손이 항해 키를 잡고 잘못 돌려

            원수의 해변에 도착하거나 파도에 파묻혀 버리도록!”

           

            루터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공격할 때, 악마가 그에게 제시한 목표는 기독교의 파멸이었으므로 이제 우리는 그가 그 일에 성공하기 위해 사용했던 수단들을 하나하나 면밀히 살펴보려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그것들이 제시하는 바는 오해의 여지가 있고, 자기모순적이요, 오류 투성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의 기만을 더 깊이 파헤쳐 보자.

            앞에서 이미 입증된 것처럼 사복음서에 51회나 언급된 안식일에 관한 기록을 살펴 볼 때, 구세주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안식일의 주인이시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으며, 그의 지상 생애 중 단 한 번도 충성된 안식일(토요일) 준수에서 스스로 이탈하신 일이 없었고, 명령이나 행동으로 그날을 다른 날로 대치할 의향을 암시하신 적도 없었다. 또한 누가가 우리에게 분명히 말 해주는 것처럼(24:1), 주께서 돌아가신 날 저녁 사도들과 여신도들은 주의 몸에 바를 향품과 향유를 사전에 준비했다가 안식일(토요일)이 지난 후에 사용하려고 했는데, 이 사실은 혹시라도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의 지상 생애 동안 단호한 의지로 준수하신 안식일 제도에 결함이 있지나 않았나 하는 의혹을 전적으로 배제해 준다. 누가가 증명한 대로, 주께서 돌아가신 후 그의 사도들이 살

아있는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남긴 행적들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 사실을 말해 주거니와 향후 30년 동안이나 이 점에서 제자들도 주님의 본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안식일(토요일)을 지켰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18:4) 이방인 개종자들, 곧 우리가 본문에서 보는 것과 같이 그날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도 집단적으로 동등하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유일하게 준수했던 동일한 제칠일 안식일을 구주께서 돌아가신 다음 3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이 준수했다는 사실을 사도행전의 말씀들을 통해 살펴 보았다. 이제 안식일(토요일)이 예배일로서 이 기간 독점적으로 준수되었다는 더 많은 입증 자료를 발굴하기 위해 주일의 첫째 날에 관한 거룩한 말씀의 기록들을 샅샅이 살펴 보고자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후 일요일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누가복음 2433-40절과 요한복음 2019절에 나타나 있다.

위 두 본문의 내용은 그날 사도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유일한 이유에 관한 얘기다. 그날은 주께서 부활하신 날(부활절 일요일)이었는데, 그 모임은 옛 안식일(토요일)을 버리고 새 날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한 새로운 이탈의 발족식(發足式)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위에 인용된 요한복음의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히 제시하는 것처럼, 그 모임에는 기도라든지 권면이나 성경 낭독 같은 것은 전혀 없고, 단지 사도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예루살렘에 위치한 그 방에 모여 웅크리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사기가 완전히 저하되었다는 사실을 온 인류에게 공표(公表)하는 사건의 기록일 뿐이다.

일요일에 관한 두 번째 언급은 요한복음 2026절부터 29절에서 발견된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5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날 모든 사도가 모여 있는 자리에 나타나셔서 부활하셨던 날 저녁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던 도마의 의심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하셨다. 만일 구주께서 날짜를 변경하셔야 했다면 온 사도들이 다 모인 이 자리야말로 절호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부활절 날 모임처럼 기도와 찬양, 또는 성경봉독 같은 것은 한 마디도 성경에 언급되지 않았다.

사도들이 일요일에 모였던 세 번째 기록은 사도행전 21절에서 발견된다. “오순절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오순절은 일요일이다)6 , 그러면 이 성경 본문이 성경을 신뢰하는 우리의 참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드디어 토요일이 일요일로 대치(代置)되었다는 어렴풋한 희망을 제공해 줄 것인가? 유대인들이 이 일요일(오순절)을 이미 1500년 동안이나 지켜왔고, 또 기독교가 정립된 후에도 18세기 동안이나 이날(오순절)을 지켜왔지만, 이들이 제칠일 안식일도 중단 없이 매 주 함께 지켜왔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 성경 본문은 아무런 위로나 안위를 제공할 수 없음이 확실하다. 오순절은 유월절 후 일곱 이레(칠일에 일곱을 곱한 날)가 지난 다음 날, 50일째 되는 날(“주일들의 안식일이라 불렸음)인데7 이날은 축제 기간 중 가장 큰 명절이었다. 그리고 이날은 제칠일 안식일이 일곱 번 지난 후 그 다음 날이므로 필연적으로 일요일일 수밖에 없다. 어느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 민족이 3000년 이상 지켜온 오순절 축일에서 주일 중 첫째 날을 지키는 관습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에 대해 연민의 정을 토로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항상 지켰던 안식일을 모독한 것에 대한 핑계가 없어 궁지에 몰린 성서적 기독교 신도 외에 누가 자기의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기의 스승인 성경을 외면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축일 오순절에 목을 매겠는가?

날짜의 변경을 옹호하는 성서적 변론인들은 흔히 사도행전 206절과 7절에 우리의 주의를 불러일으킨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외관상으로 이 성구(聖句)가 불만이 가득한 우리의 성서적 친구들에게 약간의 위로를 제공하는 듯하나 우리는 원래 훼방꾼이라 부스러기 조각 같은 정도의 위로라도 그들에게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지나치게 입증하려하면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하게 된다라는 격언으로 답을 대신할 뿐이다. 사도행전 246절을 한 번 살펴보자.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 구절과 일요일 성수론(聖守論)을 입증하기 위해 내 놓았던 사도행전 206, 7절을 나란히 대조해 보자. 이 두 구절을 얼핏 보기만 해도 마치 신기루가 순간에 사라지듯 모든 효력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느끼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성서적 기독교 신도는 이 구절을 오직 일요일에만 적용하려고 애쓰지만, 이 복음서를 기록한 누가에 의하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하며, 이런 일이 주일 중 아무 날에나 반복되었음 알려준다.

또 하나의 성경 구절이 있는데, 그 성구를 따로 놓고 보면 토요일을 일요일로 대치했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61절과 2절에 기록한 말씀이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 바울의 이 요청을 신도들이 엄격히 잘 따라주었다고 가정하고 구주께서 이 땅에 거하실 동안 매주 토요일에 무슨 일이 행하여졌고 또 그 후 30년 동안 어떻게 그 일이 계속되었는지를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해 알아 보자.

크신 주인을 따르는 자들은 매 안식일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 “안식일마다성경 말씀이 낭독되었다. “그리고 바울은 안식일마다 강론하던 그의 관습대로 주 예수의 이름을 강론하였다”(18:4). 그렇다면 이미 충분히 입증된 것과 같이 토요일마다 관례적 의무로 행해지던 성경 낭독, 기도, 권면 및 설교하는 일 등이 일체 폐지되고 그 대신 바울의 요청에 의해 주 중의 다른 날 연보를 거두는 일로 대치되었다고 추론하는 것보다 더 엉뚱한 일이 어디 있을까?

지금 검토 중인 이 본문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사도들과 여신도들이 수난 금요일 일몰 전에 취한 행동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이 향품과 향유를 구매한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로부터 내려진 후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일상 행위를 중단하고 여호와 앞에 거룩한안식일이 지나기까지 기다렸다가 일요일 아침에 비로소 거룩한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는 장례 절차를 마치기 위해 묘실로 찾아갔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시신에 향유를 바르는 일을 토요일에 행하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 이유는, 거룩한 주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는 일이 엄격한 안식일 준수에 위배된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이었다. 안식일 준수는 다른 무엇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성경 본문의 그 일요일 바로 전날은 안식일인데, 그 안식일의 준수가 보류되었다는 것이 입증될 때까지는(안식일은 매주 성수되었으므로 그것이 입증될 수는 없다) 일요일마다 연보를 모아두라고 한 바울의 요청은, 그리스도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는 일처럼 안식일에는 행할 수 없는 일로 분류되어 결국 편의상 다음 날, 그러니까 일요일, 곧 주일 중 첫째 날로 미루어졌던 것이다.

신약 성경에 언급된 안식일(토요일), 그리고 주일 중 첫째 날(일요일)에 관한 성경 구절들을 모두 정리해본 결과 우리는 현재까지 성경에서 토요일이 일요일로 대치된 것을 증명할 만한 어렴풋한 근거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제 한 가지 남은 것은 신약 성경에서 발견되는 주의 날(Lord’s day, 또는 day of the Lord)”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조사해 보는 일이다. 이에 관한 우리의 견해를 다음 호의 기사를 통해 계속 다루려고 한다. 그리하여 어떤 종교 단체가 그 체제적 부조화 때문에 더는 변호받을 수 없으며, 자기 모순적이요 자멸적인 것이 증명될 때, 우리는 그 부조화를 적절히 지적하면서 최종 결론을 내리려 한다.

 

편집자 ()

4 말할 나위 없이 여기 루터에 관해 언급된 것에 우리는 털끝만치도 동의할 수 없다. 루터가 모든 진리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믿는 교회는 루터교회 외에는 없다. 그러나 루터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 한마디로 그는 그리스도인 중 영웅이다. 그의 개혁운동이 처음 시작된 기세로 계속되었다면, 오직 성경만을 믿는다고 공언하면서 교부들의 유전도 함께 수용하고 있는 교황권이 오늘날과 같이개신교단을 향해 빈정거릴 수 없었을 것이다.

5 이날이 일요일이라는 것은 개신교회의 주장인데, 가톨릭 미러 지는 이것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주장에 찬성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본문이 어떻게 주일 중 첫째 날인 일요일을 가리킨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것은 큰 신비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이 전 모임은 주일 중 첫째 날에 있었다고 성경이 밝히 말 해준다. 그리고 일주일은 칠일로 되어 있으므로 이날로부터 다음 첫날까지는 칠()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기록은 이 모임이 팔()일 후에 있었다고 말한다. 일주일 속에 팔()일을 집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은 숫자 게임이나 달력에 관련된 큰 신비가 아닐 수 없는데, 성경을 곡해한 경우 치고는 도를 넘으므로 평균 지능을 가진 우리로서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위의 성경 본문을 근거로 여호와의 안식일일요일로 대체되었다는 주장을 도출(導出)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6 그 오순절은 일요일이 아니었다. 다음 편집자 주()를 보라.

7 우리의 구주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드시고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러므로 금요일은 유월절, 또는 무교절 절기의 첫째 날이었다. 그날 다음 날부터 오순절날까지의 오십일이 계수된다.(23:6, 11, 15, 16) 그날 다음 날은 계명에 의거하여 안식일이고(23:56) 오십일 중의 첫째 날이다. 여기 확실한 사실은 오십째 날은 일요일이 아니고 안식일이라는 사실이다. 임의로 어떤 금요일을 택하여 그 금요일의 다음 날을 기산점으로 오십을 계수하는 것은 아무라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월절은 주일 중 몇째 날이라는 언급이 성경에 없고, 항상 첫째 달의 열네째 날이므로 오순절이 매번 일요일과 겹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여기 이 편집인의 주석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논란이 되고 있는 현 문제, 곧 가톨릭과 개신교 양측의 주장, 곧 그 특별한 오순절이 일요일과 겹쳤다는 주장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이 주석은 다만 성경 해석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삽입된 것이며, 이 성경 본문을 둘러싼 논란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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