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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로마의 도전(Rome's Challenge)" 제6회 -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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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우리는 이제까지 일련의 기사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명백한 사실들을 제시함으로 독자들이 절대로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결론에 도달하도록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6세기에 성서주의(聖書主義) 제도가 그 모습을 갖추게 되자 그 제도는 교회의 자산을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야만적 운동을 통해 기독교를 여지없이 유린했다. 그리하여 창시자께서 제정하신 모든 성례와 거룩한 제사제도 등이 모두 사라지고 그들에게는 오직 성경 외에 남은 것이 없었다. 그 주동자들은 성경만이 기독교 교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그들의 유일한 스승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물론이요 오늘날도 안식일 준수(일요일 준수를 말함 역자 주)를 영구적으로 정립시키는 것이 그들의 신앙 신조들 중 최 우선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지난 삼세기 동안 개신교 교단들은 같은 성경을 신봉하면서도 교리적으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안식일 준수에 관한 교리는 그들이 의견 일치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신조다. 안식일 준수는 성서적 이론의 요약이요 본질로 여겨진다. 개신교회의 강단에서는 매주 가톨릭교 국가들의 안식일 준수가 성서적 국가의 적절하고 자기도취적인 안식일 준수에 비해서 느슨하다며 끊임 없이 공격하는 설교가 울려펴지고 있다. 세계 박람회장을 일요일에도 열 것이냐는 문제가 아직 결정되지도 않았을 때,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성경을 강론하는 목사들이 모든 개신교 강단을 통해 과시했던 고결한 의분을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박람회에 전시하려고 반입했던 물품 상자들을 열지도 않고, 그 결정에 대해 나타냈던 한 교파의 거룩한 분노에 대해 무지한 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 지극히 선량하고 구변 좋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자세히 연구한다면 그 안에서 자기들과 아주 흡사한 일단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들은 구세주께서 이 땅에 거하실 당시 그분을 밤낮으로 따라다니며 심히 괴롭히던 자들인데, 그분의 안식일 지키는 방식이 자기들처럼 엄격하지 않다는 이유로 견딜 수 없으리 만큼 그분을 중상모략(中傷謀略)하던 유별나게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안식일 준수를 상식 차원에서 대처하는 것을 증오한 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바리새인적 교만을 경멸하셨는데 그들을 향한 경멸의 도가 극치에 달했지만, 그분의 마음을 묘사할 적절한 어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나님의 마음은 19세기 말인 오늘날에도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나 동조자들이 외치는 노골적이고 격렬한 항의를 옛날과 다름없이 대하실 것이 분명하다. 고대 바리새인들은 그래도 참 안식일을 준수했지만, 우리의 현대판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을 맹신하는 바보 앞잡이들을 의존하며 평생 참 안식일을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안식일은 구주께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지키셨고, 그의 사도들도 주님의 본을 좇아 삼십년 동안 지킨 날이다. 위의 사실들을 겹쳐놓고 보면, 가장 긍정적인 계명에 대한 고의적인 신성 모독적 배척이라 할 수 있는 극심한 모순이 오늘날 성서적 기독교계의 행위에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과 안식일은 개신교 사상의 좌우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과 그들이 지키는 안식일과는 상충됨을 입증했다. 우리는 그들의 이론과 실천 사이에 그보다 더 큰 모순이 있을 수 없음을 증명했다. 우리는 그들의 성서적 조상들이나 그들 자신이 안식일을 단 한 번도 지킨 일이 없음을 증명했다.

            하나님께서 거듭거듭 반복하여 지명하신 날을 그들이 매주 더럽히고 있음에 대해 이스라엘 민족들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역사적 증인이다. 그들은 자기의 스승인 성경은 도외시하고 정죄하면서도 오히려 가톨릭교회가 제정한 일요일을 채택하여 지키고 있다. 만일 개신교도들이 맑은 양심으로 이 변론들을 자세히 읽는다면, 그들은 자기의 스승인 성경이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하나님의 뜻으로 안식일 제도가 제정되었음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 이후에도 그들은 안식일을 준수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계속해서 어길 것인가?

            우리가 아는 세계 역사 가운데 이보다 더 바보스럽고 어리석음을 자초하는 원칙 유기(遺棄)의 표본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스승은 그들에게 안식일 계명을 매주 준수할 것을 매 페이지에 단호하게 요구하며, 모든 사람이 자기를 유일한 무오의 스승으로 인정하고 순종하기를 바라는데, 그 스승의 제자된 자들이 삼백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고 있으니 이게 웬일인가! 저 성서적 기독교 신도들의 거대한 집합체인 감리교회는 안식일이 결코 폐지된 적이 없음을 이미 선언했고, 영국 국교를 따르는 신도들은 그들의 딸 격인 미국의 성공회와 함께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그들의 신조 제20항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위배되는 것을 제정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토요일에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절대적으로, 반복하여, 가장 단호한 어조로 명령하고 있다. 이 명령을 불순종하는 자는 죽임을 당한다는 최고로 명료한 위협이 그 계명에 첨부되어 있다. 모든 성서적 교회들은 하나같이 아무 변명으로도 자신을 정당화하지 못하며 어리석음을 자초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말씀들이 얼마나 진실되게 이 통탄할 상황을 지적하고 있는가? “악은 자기 자신을 속인다.” 오직 성경만을 자기의 스승으로 삼고 따른다고 공언하면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유일한 스승을 비열하게 무시해 버렸다. 그들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하신 명령을 어기며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범한자들에게 경고하신 극히 두려운 위협을 아랑곳하지도 않고 자기들의 목적에 부합한다 해서 모든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낙인이 찍힌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관습을 채택해서 따르고 있으니 말이다.

            이 연재 기사를 마감하기 전 허두(虛頭)에 제시되었던 우리의 주장에 독자들의 주의를 재환기시키려 한다.

1.     기독교의 안식일은 성령과 그의 아내인 가톨릭교회와의 연합으로 탄생한 적출자(嫡出子)이다.

2.     이와 관련된 개신교단의 모든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고, 자기모순적이며 자멸적이다.

첫 주장은 거의 입증(立證)이 필요 없다. 가톨릭교회는 개신교가 생기기 천년 이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사명에 힘입어 예배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하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사명에 힘입었다라고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부르신 분께서 당신 자신의 권세를 교회에 부여(附與)하셔서 만민에게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라고 가르치게 하셨고, 듣지 않는 자는 이방인들과 세리들을 취급하듯 징벌할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 끝날까지 교회와 함께하실 것도 약속하셨다. 교회는 주께서 보내신 스승으로서의 헌장을 가지고 있다. 이 헌장은 무오적이며 동시에 영구적이다. 개신교가 탄생했을 때는 기독교의 안식일이 너무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아무도 그 기존 제도를 역행할 수 없었으므로 그들은 그 안식일 제도를 묵인하고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삼백년이 넘도록 가톨릭교회가 예배의 날을 변경할 권한이 있음을 시인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안식일은 오늘날까지 성령의 아내인 가톨릭교회가 낳은 자식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이점에 대해서는 개신교계가 일언반구의 반박도 한 일이 없다.

그러면 이제 두 번째 주장을 살펴보자. 이번에는 오직 성경만을 우리의 스승이요 믿음과 윤리의 판단으로 삼을 것이다. 이 스승은 날짜를 변경하는 것을 가장 단호한 어조로 금지하는데 거기에는 중차대한 이유가 있다. 여기에는 영원한 언약을 요구하는 명령이 포함되었는데도, 스승이 지키라고 명령한 그날은 한 번도 준수한 적이 없다. 그 결과로 확고한 원칙으로부터의 엄연한 배도(背道)가 발생한 것인데, 이것을 구태여 언어가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표현하자면 자기 모순적이요, 어리석음을 자초하는 것이요, 필연코 자멸적이다.

     그 패륜은 아직 한계점에 이르지 않았다. 아니, 아직 멀었다. 그들이 가톨릭교회의 품을 떠날 때 내놓았던 구실은 기록된 말씀이 가르치는 진리를 등지기 위한 가식에 불과하다. 그들은 기록된 말씀을 그들의 유일한 스승으로 삼는다고 공언했으나, 본 변론들을 통해 명쾌하게 지적된 것처럼 그들은 그것을 채택하자마자 즉시 포기해 버렸다. 그들은 가장 필수적 교리에서 그들의 유일한 스승의 명백하고 변치 않고 한결같은 가르침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조롱거리, 망상, 함정이라고 적절히 표현할 수 있겠다.

 

[편집인의 해설] … 숨겨진 역사 한 토막

종교개혁이 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ent)에서 정죄된 것은 바로 이 점(개신교 측이 가진 분명한 모순 편집자 주) 때문이었다. 이 기사들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개혁자들은 쉴 새 없이 가톨릭교회가 기록된 말씀에 포함된 진리를 떠나 배도했다고 비난하였다. “기록된 말씀,” “성경, 오직 성경,”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등이 그들의 좌우명이었으며, “기록된 성경 말씀을 유일한 표준으로 삼을 것을 호소하는것이 종교개혁과 개신교 신앙 운동이 선포하는 강령이었다. 반면 가톨릭교회의 주장과 입장은 성경과 유전,” “교부들의 일치된 동의 하에 교회가 내린 성경 해석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트렌트 공의회의 주된 이슈였고, 공의회가 모인 주 목적은 유럽에서 개혁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던 이 특별한 문제를 심의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공의회에 상정된 믿음과 관련된 첫번째 의제가 바로 이 이슈에 대한 것이었다. 공의회에 참석한 가톨릭 측의 대표들 중에도 유전을 포기하고 성경만을 권위의 표준으로 채택하기를 바라는 강력한 움직임이 있었다. 공의회장에서 이 견해가 단호하게 제시되었던 까닭에 교황의 특사들은 유전을 완전히 배제하고 성경을 유일한 권위의 표준으로 삼으려는 강력한 움직임이 있음을 교황에게 서신으로 보고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분명히 개신교도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명백한 양보를 의미했다. 이 위기로 인해 성경과 유전이 확실하고 유일한 기초라고 반대편을 설득시키는 작업이 공의회 중 극우파 대표들에게 위임되었다. 만일 이것이 성공하면 공의회는 종교개혁을 정죄하는 칙령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었고, 실패하면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이 여러 날 계속되면서 공의회는 거의 교착상태(膠着狀態)에 빠지고 말았다. 드디어 장시간의 치열한 정신적 긴장이 이어진 끝에 레기오(Reggio)의 대주교가 공의회장에 들어와 성경만을 주장하는 파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변론했다.

개신교도들은 오로지 기록된 말씀만이 그들의 믿음의 기초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표준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가톨릭교회가 기록된 말씀을 등지고 배도하여 유전을 따르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의 반역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그러나 오로지 기록된 말씀만이 믿음의 기초라는 그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성경만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는다는 그들의 신앙고백은 거짓입니다. 다음과 같이 증명(證明)하겠습니다. 기록된 말씀은 명백하게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킬 것을 규정(規定)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제칠일을 거부합니다.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성경을 유일한 표준으로 삼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려면 그들은 성경에서 일관성 있게 규정된 대로 제칠일을 준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록된 말씀에 규정된 안식일 준수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다만 본 교회의 유전일 뿐 성경상 아무 근거도 없는 일요일을 채택하여 그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유일한 표준으로 삼는다는 그들의 주장은 틀렸고 성경과 유전이라는 필수적 교리가 확고부동하게 성립됩니다. 여기서 개신교회들이 스스로를 향해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에 관련해서 개신교 측에서는 달리 논박할 길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1530년의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Augusburg Confession)에 의해 주의 날의 준수는 다만 교회가 정한 것임을 개신교단이 분명히 인정했기 때문이다.

레기오의 대주교의 변론은 성령의 감동으로 수용되었고,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오직 성경을 지지하는 파()는 결국 승복했고, 공의회는 즉시 만장일치로 개신교주의(改新敎主義)를 정죄했다. 그리고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의 성찬예식(聖餐禮式)과 권위에 대항하는 부당한 반역으로 규정되었다. 그 결과 154648, 두 가지 칙령이 선포되었다. “첫째 칙령은 성경과 유전은 함께 수용되고 공경되어야 하며, 2경전(경외서를 말함 역자 주)도 정경(正經)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규정이었다. 둘째 칙령은 불가타(Vulgate) 성경을 유일한 라틴어 표준 성경으로 규정하고, 그 라틴어 본에 성경 원본을 파기(破棄)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했으며, 교회가 견지한 일반적 이해에 위배되는 해석, 즉 교부들의 일치한 의견과 상이한 성경 해석을 금한다라는 것이었다.9

이렇게 개신교 측의 행위는 그들의 신앙고백에 위배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가톨릭교회가 개신교회를 정죄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노심초사 찾고있던 좋은 근거를 제공하였다. 그리하여 개신교 사상과 전반적 종교개혁 운동은 단지 가톨릭교회의 권위에 항거하는 이기적 야망에 의거한 반역으로 정죄되었다. 이 분쟁의 결말을 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성경이 규정한 제칠일 안식일은 배척하고 대신 가톨릭교회가 규정한 일요일을 준수하기로 채택한 개신교 측의 일관성 없는 관습이었다.

이것은 이 분쟁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으로써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위의 자료가 보여주다시피 이 논란은 오늘날까지도 가톨릭교회가 개신교를 규탄하는 주요 이슈를 이루고 있으며, 이 변론에 의거하여 개신교주의의 행로(行路)는 전반적으로 변호 불능, 자기 모순적 및 자멸적이란 표현으로 고발, 정죄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개신교 신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며, 개신교주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실이거나 혹은 종교를 빙자한 속임수로 추정되는 성서적 안식일에 관련된 신성모독을 놓고 습관적으로 고함치는 경건한 개신교 목사들에게 고한다. 당신들이 애지중지하는 잡견(雜犬)에 관한 우리의 논리적이고 성서적인 분석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면 신중하게 재고할 것을 촉구한다. 혹 사리에 맞게 분석된 단편(斷片)들이 수집되고 회생되어 활기를 띤 그 잡견이 제시될 경우, 우리는 삼가 사려 깊은 숙고와 진정한 충심으로 그것에 답변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가 이 경건한 체하며 호통치기를 좋아하는 이들을 너무도 잘 알거니와, 그들로부터 고독한 함성(喊聲)이 들려올 것이 분명하다고 독자들께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이 비성서적 문제를 다시 거론한다면 그것을 우리가 분석하여 그들에게 재차 굴욕감을 안겨줄 것을 그들이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우리에게 오지 않을 것 또한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의 잠정적 방침은 저자세를 취하는 것인데, 그들이 이 방침을 채택할 것이 분명하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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