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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로마의 도전(Rome's Challenge)" 제7회 - 부록 I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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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I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이 소책자의 내용은 가톨릭 미러 지에 실렸던 기사들인데 이 기사들이 제시하는 자료가 믿을만하고 그 내용의 논리가 정연(整然)하므로 이것을 재출판하여 최근에 일요일 준수에 관한 논란이 어떤 국면에 진입했으며, 몇몇 선도국(先導國)들에서 내부적으로 또는 국제적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에 관해 정보를 제공하려 한다. 우리는 이런 논란을 환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그 논란이 종식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개신교도들이 어디서나 그들의 신앙고백과 행위가 철저하게 일치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이 그들과 로마와의 관계에 틈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현재 상황은 이 책자의 내용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제종교자유협회는 이 문제의 진정한 형세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우리의 역량을 다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삼았다. 이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좋아해서가 아니고, 누구나 그 진상을 알면 그렇게 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러 해 동안 예의 주시해온 바 과거에 드러났던 논란의 성격이 아직도 변함없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우리는 그 내용을 이 책자를 통해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일반 대중들과 개신교 신자들, 특별히 일요일 법령의 필요를 옹호하거나 미국에서 일요일 법제화 운동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해왔다. 그들이 현재 취하고 있는 노선은 로마의 장단에 춤을 추는 것이다. 또 그들의 노력은 결국 성공할 것인데, 언젠가 그들은 불가불 로마로부터 더군다나 권세까지 소유하고 있는 로마로부터 - 왜 일요일이 준수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해명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여러 해 동안 이 사태가 반드시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이제 이 사태가 도래했으므로, 아직 기회가 허락될 동안 이 경고를 널리 전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일 뿐이다.

            왜 로마가 예전에는 이렇게 대담하게 나오지 않았을까? 그들은 왜 그토록 오래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직 그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권력 가진 자처럼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그럴 권력이 없었다. 로마가 국가와 정부 차원에서 인정받고 일요일을 법제화하기 위해 맹렬하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로마가 미국 정부의 권력을 자기의 손에 걸머쥐기 위하여 스스로 들인 노력보다는 미국의 개신교회들이 로마를 위해 그 일에 기여한 바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크다.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로마는 잠잠히 기다렸던 것이다. 이렇게 개신교회가 로마와 손을 잡고 이 끔찍한 일을 성취하자 마자 로마는 즉시 일어나 그들 본래의 오만(傲慢)과 옛 정신을 다시 발휘하여 개신교를 향해 그들이 일요일을 준수하는 이유를 해명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로마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개신교도들이 맹목적으로 로마의 손에 쥐어준 권력이 확고부동하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이렇게 개신교도들이 자기의 손에 쥐어준 권력을 로마는 이제 개신교도들을 파괴하는 일에 사용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책자의 26쪽에 실린 변론에는 가톨릭 미러 지(미국의 추기경들과 가톨릭교회를 의미함)가 바로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증거가 들어있는바 그 이상 더 무슨 증거가 필요한가? 다시 그 페이지로 돌아가서 뉴욕 헤럴드 지의 1874년 기사의 인용문을 읽은 후 지금 벌어지는 결과들을 보라. 이 감리교 감독들의 진술이 명백하게 현재의 상황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가톨릭 미러 지가 감리교 감독들의 진술을 19년 동안이나 보관하고 있었던 것은 이런 때를 위함이 아닐까? 이밖에도 가톨릭교회가 차곡차곡 모아 둔 또 다른 자료들이 있음을 개신교회가 알게 되겠지만, 그것들이 이용될 때 개신교회는 깜짝 놀라 말문이 막힐 것이다.

            현재 이 분쟁은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간에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가톨릭 미러 지의 사설을 재출판하는 것 외에 없다. 대두된 쟁점들은 하나같이 개신교회가 자기들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한 주장들이다. 가톨릭교회 측에서 논쟁을 시작했고, 이에 답변할 책임은 일요일을 준수하는 개신교회들에게 있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만일 개신교회가 아무 대답 없이 침묵을 지킨다면 그것은 가톨릭교회의 주장이 옳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가톨릭교회는 그에 대응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개신교회 측에서 답변이 나온다면 가톨릭교회는 그들의 답변을 역이용할 것이며, 상황에 따라 자기들의 손에 쥐어준 권력을 통해 실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개신교회가 이 논란에 개입하든 안하든 가톨릭교회의 입장에는 아무 변동이 없을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개신교회를 무시하는 태도며,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취급하려는지 그 진의(眞意)가 여기 재출판된 기사의 마지막 문단에 있는 그들의 도전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개신교도들의 피난처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정정당당하게 기록된 말씀”, “성경, 오직 성경의 정신으로 굳게 서고, 여호와의 안식일위에 굳게 서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권위 외에는 아무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표(20:12, 20) 외에는 아무 표도 받지 않으며, 그의 명령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권세로 보호받을 때 그들은 로마와 그의 모든 연합 세력을 극복하고 승리할 것이며, 하늘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들고 그들의 승리를 영원토록 송축하게 될 것이다.(18; 15:2-4)

            개신교도들에게는 이 궁지로부터 자신을 건져낼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 그들이 과연 그렇게 할 것인가? 그들이 일관성 있게 개신교의 신앙 고백 위에 설 것인가? 아니면 계속 개신교 정신을 공언하는 반면 변호 불능, 자기모순적, 자멸적입장을 고수하고 가톨릭 유전을 지키며 가톨릭교회의 조소와 정죄를 받을 것인가? 그들이 과연 기록된 말씀, 성경만을 그들의 유일한 권위와 표준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계속변호 불능, 자기모순적, 자멸적교리를 고수하며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따르고 그 권위의 표를 취할 것인가? 그들은 성경대로 여호와의 안식일인 제칠일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가톨릭교회의 유전을 따라 일요일을 지킬 것인가?

            생각하는 독자들이여, 그대는 어느 길을 택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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