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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히브리 사상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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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석진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4.13 14:41 조회수 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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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히브리 사상가와의 만남

Paul Tilich의 책을 읽다가
그의 절친한 친구 Martin Buber에 대한 언급을 보게 되었다.
Tilich는 Martin Buber를 그 시대의 선지자라고 불렀다.
히브리 사상가이며,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Martin Buber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마침 집에 있던 “I and Thou”를 다시 읽고
Barns & Noble에서 “Good and Evil” “ The Legends of Al –Shem”을 사서 보았다.
그러한 책들을 읽기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상하게 난해한 그의 글들이 마음에 닿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의 수제자가 Abraham Joshua Heschel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도 지금은 확실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유명한 기독교 신학자와 아주 절친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Sabbath라는 책으로 익히 알려져 있어
히브리 사상가를 연구해야겠다는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게 되었다

Abraham Joshua Heschel

그의 문체는 아름답고 힘이 있고 정열이 넘친다.
무엇보다도 단순한 표현에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었다.
그의 책을 사서 읽는 몇 년의 재미는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A Passion for Truth” 지금도 이름만 들어도 내 가슴이 뛴다.
이 제목으로 설교도 한 적이 있다.
“Who is Man?” “Man’s Quest for God” “God in search for Man” “Man is not alone”
제목 자체에도 나를 매료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의 책 “Prophets”도 참 유익한 책이다. 친구 장병호 교수에게 선물한 책이다.

간단하게 그의 한 사상을 말하면
하나님은 변하시는 분이다는 것이다.
그 당시 학계에서는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분이다가 팽팽하였는데
하나님은 그 마음을 변하시는 분이다라고 말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몇 년의 열정의 세월 후에 한가지 놀라운 사실에 고민하게 되었다.
인간의 궁극적인 삶과
그 삶이 주는 모든 문제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상에
한 마디도 예수의 이름과 그의 이야기가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뿐 아니라
신약의 어느 성경절도
그 많은 Index에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에게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Heschel은 나에게 삶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종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지만
삶의 모든 문제의 해결에
하나님의 뜻인 예수를 믿는 일에 큰 길잡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lie Wiesel

Elie Wiesel은 미국에서 유대인 Holocaust Memorial Council의 회장으로 있었다.
그는 198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사춘기 때에 유대인 대 학살을 경험한 것을 소재로 기록한 “Night”가 유명하다.  “Messengers of God”, “Day”, “Dawn” “Gates of Forest”등 여러 저서들이 있다.
아주 작은 소책자인 Night는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매일 많은 동료들이 죽어 넘어가고 gas chamber로 잡혀가고 있었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 속에 포로 수용소에 새해가 왔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광장에 모여들고 있었다.
하늘은 그들을 버렸고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지만
그들은 그들을 버린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광장에 모여들었다.
그 순간 인간은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위대한 인간, Superhuman을 본다.
자식들이 나무에 매달려 죽었다.
그 아래로 수 많은 죽음의 행진을 하는 포로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중얼거렸다.
“신은 죽었다고…”

나를 놀라게 한 것은 Holocaust를 거쳐온 그들에게는
예수의 십자가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무 죄 없이 그들의 자식들이 십자가에 수 천 번 죽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사건을 주셨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바울처럼 오직 십자가만의 사상이었다.
십자가의 사상에 매료되어
일년을 십자가에 대해 연구하였고
목사님의 배려로
한 기에 한 번씩 일년을 금요일 설교 시간에 설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책들을 읽고 난 후 나는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예수의 십자가만으로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로 가는데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수를 만나 하늘로 가는 긴 여정에 있어
우리 인류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은 예수 그 자체라는 것이다.
예수의 탄생과 사심과
그의 하나님에 대한 증언과 가르치심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함께 있을 때
인간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마치면서
이전 글에서 언급한 하나님을 독점하는 히브리 사상과
수 천 년의 하나님과 함께한 히브리인들의 예수 없는 사상
Holocaust를 겪으면서 십자가의 사건이 의미 없는 사건이 된 히브리인들의 사상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언어와 생각과 문화가 사상을 형성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히브리인의 사상에 이제는 큰 경계심을 둔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나와 우리에게 큰 문제점을 본다.

좋은 안식일을 보내세요.

2008년 2월16알 안식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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