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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애국 의사 삼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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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석진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4.13 14:44 조회수 1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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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애국 의사(義士) 삼손의 이야기

들어가는 말        

우리는 삼손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지난번 교과 공부를 인도하면서 더욱그 사실을 실감하였다. 어느 누구도 삼손과 같은 인물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삼손을 자기의 정욕을 제어하지 못하여 인생을 망친 대표적인 인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삼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남녀 관계에 대한 우리들의 편견과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떤 인물을 생각할 때 너무 피상적으로 평가하는 습관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삼손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인식을 조금이나마 없애기 위해 몇 가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삼손과 그 시대적 배경

삼손이 태어나기 전 이스라엘의 사사들을 살펴보면 길르앗 사람 야일이 22년 동안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고 입다가 6년을, 입산이 7년을, 엘론이 10년을, 압돈이 8년을 사사로 있었다. 그 후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악으로 이스라엘은 40년간의 긴 세월 동안 불레셋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이 이스라엘의 암흑의 역사에서 일본에 의해 36년간의 긴 세월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은 치욕적인 우리의 역사를 생각나게 한다. 만약 우리가 애국 의사인
안중근이나 열사 이준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의 생각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삼손이 이스라엘의 애국 의사(義士)인데 그를 정욕을 제어하지 못하여 자기의 인생을 비참하게 마친 자로 생각한다면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시작함에 있어 우선 결론적인 이야기를 먼저하고 그 후에 그의 출생과 생애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믿음의 조상 삼손

삼손을 믿음의 조상 삼손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런데 삼손의 이름이 히브리 11장에 언급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히브리 11장 32절과 33절에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신앙을 하는 우리 모두의 꿈은 우리의 이름이 이 히브리 11장의 어느 한 구석에 올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야기하고자 하는 삼손의 이름이 그곳에 언급되어 있다. 이 한 사실만 생각해도 삼손은 믿음의 사람임이 틀림없다. 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말은 어떤 한 순간에 어떠한 일을 믿음으로 행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비록 삶에 넘어지는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또한 하나님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일어나는 사람이다. 히브리 11장에 기록된 사람들은 그러한 사람들이다. 삼손은 믿음의 사람이다. 우리의 이름들이 그곳에 기록될 것이라는 것을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적어도 삼손은 우리보다 검증받은 믿음의 사람이다.

영의 사람 삼손

삼손의 출생에 대한 기록이 있는 사사기 13장을 보면 재미 있는 기록들이 있다. 이 기록들을 읽으면서 삼손은 영의 사람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두 성경 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사사기 13장 7절

이 성경 절에서 삼손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삼손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자이다. 그는 사무엘과 침례 요한과 같이 그 시대에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잉태되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는 그 시대의 이스라엘을 구원한 그 시대의 예수였다. 그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그 사이에 있는 그의 평생의 삶이 부정적인 삶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의 삶은 이스라엘을 불레셋에서 구원하는 애국자의 삶이었다.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소라와 에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 사사기 13장 24,25절

이 성경절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라는 말씀에 주의를 환기 시키고자 한다. 이 성경절을 NASB에서 “And the Spirit of the Lord began to stir him in…”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사용된 “stir”는 히브리 원어에서는 “파암”이라고 하는데 “몰아대다(치다), 재촉하다, 압박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령이 삼손을 몰아치고 압박하여 그의 생애를 이끌어 가고 있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이 성경절 바로 다음에 사사기 14장에 삼손이 불레셋 여자 중 한 여자를 좋아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연애 사건도 성령의 강권에 의해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한 삼손의 계획적인 것일 뿐 아니라 “여호와께로서 나온” 계획인 것을 알 수 있다.

애국자 삼손

삼손은 힘이 장사이다. 모태에서부터 성령의 도움으로 잉태된 것을 생각할 때 그가 힘이 장사인 것은 하나님의 큰 뜻에 의한 것이 틀림없다. 나실인으로 힘이 장사인 그가 40년 동안  나라가 불레셋의 통치를 받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라를 구원하는 일이 그의 사명으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 사명은 그가 태어나야 할 존재의 의미인 것을 그가 깨달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약속이 벌써 태어나기 전에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사사기 13장 5절

우리는 삼손이 딤나의 불레셋 여인을 좋아한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방 여자를 좋아하므로 그의 생애를 파멸로 이끌게 되며 결국에는 자기의 정욕을 제어하지 못하여 죽음에 이른다고 생각한다.

사사기 14장 4절에 “이 때에 불레셋이 이스라엘을 관할한 고로 삼손이 틈을 타서 불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인줄은 알지 못하였더라.”라고 기록되었다. 이 성경절을 NASB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However, his father and mother did not know that it was of the Lord, for He was seeking an occasion against the Philistines.” 이곳에서 “틈을 타서”라고 언급된 것은 원어에서 “아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인데 “기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삼손은 불레셋을 치기 위한 기회로 딤나의 불레셋 여인을 좋아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삼손의 계획이 사실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은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부모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여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우리는 삼손의 부모와 같이 이 삼손과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삼손의 부모처럼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불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하고 야단치고 삼손을 형편없는 자로 이야기하고 있다. 조국을 구하기 위해 결혼 생활과 가족이라는 것도 성령에 의해 내 몰아쳐지고 있는 삼손의 삶을 볼 수 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사랑과 결혼과 가족의 개념도 뒤에 두는 애국자 삼손의 모습이다.

삼손과 그가 사랑한 여자들

삼손의 이야기에서 삼손이 사랑한 여자가 두 명이 출현하는데 하나는 처음 결혼한 딤나의 여인과 그 유명한 들릴라이다. 수수께끼 사건으로 시작하여 삼손은 불레셋을 치기 위한 기회들을 점점 더 많이 갖게 되며 결국에는 그의 장인이 그의 아내를 삼손의 동무에게 주므로 사건이 더 커지게 되었다. 결국 삼손의 아내와 아비가 불레셋에 의해 불살라 죽게 되므로 삼손의 분노가 더욱 커지게 되었으며 불레셋을 치기 위한 큰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삼손의 이러한 첫 결혼 사건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불레셋에 대한 증오가 나라를 구한다는 대의적인 애국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의 비참한 파경을 이르게 된 개인적 한과 함께 어울러서 불레셋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하므로 적들을 물리치는 일에 더 열정적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삼손의 불행한 첫 결혼 생활이었으나 혼자 힘으로 불레셋을 치므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의 시작이 되었다.

삼손의 이야기 중에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한 사건이 있는데 그것은 사사기 16장 1절에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라는 성경 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절을 접하면서 얼마나 삼손이 타락하였는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 우리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36년간의 긴 세월 동안 박해를 받을 때 얼마나 많은 애국자들이 기생의 집에 은신처를 두었는지 생각해 본다. 또한 히브리 11장에 기생과 연관하여 나오는 두 인물이 있는데 하나는 기생 라합 이고 다른 한 사람은 사사 입다 이다. 기생 라합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스파이들을 숨겨준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입다는 기생의 아들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이다.

삼손의 다음의 여자는 들릴라이다. 우리는 잠깐 들릴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불레셋의 여자로서 삼손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또한 삼손의 첫 번째 부인과 그의 가족이 죽음을 당한 경험을 생각 해 볼 때 삼손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 면은 우리가 역사를 돌이켜 보면 사랑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조국을 배반할 수 없다. 불레셋에게는 삼손은 없애야할 가장 첫 번째 존재인 것이다.그래서 불레셋 나라에서 현상금을 은 일천 일백을 제공한다고 들릴라를 유혹했다. 이 일천 일백의 은은 참으로 거금인 것이다. 주석에 의하면 은 오천 오백 세겔에 해당하는 것으로 요셉의 몸값과 비교하면 노예를 250여명을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성경에서 일천이라는 숫자는 셀 수 없는 숫자를 의미한다. 이 곳에서 일천 일백이라는 숫자는 셀 수 없이 엄청난 은과 그것에 일백을 더한다는 의미이다. 이 사실을 보면 얼마나 불레셋이 삼손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들릴라가 삼손을 잡게 되면 불레셋의 영웅일 뿐 아니라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역사는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몸과 목숨을 바친 수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들릴라도 자기의 조국을 위해 삼손을 잡아야 할 사명이 있다.

누가 삼손을 정욕에 어두워 신세를 망친 어리석은 자라고 말 할 수 있는가? 삼손의 첫 부인은 죽고 결혼하지 않은 상태인 것 같다. 그러다 삼손은 들릴라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성령의 강권으로 불레셋을 치기 위해 기회를 가지려고 한 것인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삼손의 생애를 보면 불레셋을 칠 때에는 언제나 그 주위에 여자로 인한 사건이 있다.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하게 된다. 결국에는 불레셋의 스파이 들릴라와 불레셋을 치려고 하는 삼손과의 계획에서 삼손은 들릴라에게 속아 적들에게 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삼손의 힘의 비밀을 알기 위해 들릴라는 매일 쉬지 않고 졸라댔다. 삼손은 정말로 들릴라를 좋아했는가 보다. 삼손뿐 아니라 남자가 가지고 있는 큰 약점이다. 어느 남자가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매일 조르는데 계속 거짓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등치 큰 삼손이 사랑하는 들릴라 스파이의 간계한 꿰임에 죽을 지경이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라고 사사기 16장 16절에 말하고 있다. 삼손은 결국 스파이 들릴라의 속임에 넘어가 불레셋 군인들에게 잡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유형의 사건들을 우리의 역사에서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삼손은 불레셋 군인들에 잡히어 최후를 비참하게 마치지 않았다.    
삼손의 죽음과 그의 서원
삼손이 불레셋에 의해 머리를 깎게 되었을 때 그의 나실인으로의 마지막이 되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서 떠났다. 모태에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나실인인 삼손의 생애는 여기에서 이렇게 끝나면 참으로 불쌍한 존재이다. 삼손이 나실인이 된 것은 그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고 모태에서 하나님에 의한 것이고 그 부모가 그렇게 교육 시켰다. 그러나 이제 그런 나실인으로의 삶이 끝났다. 나실인이 기한이 되면 머리를 민다. 불레셋 적군에 의해 머리가 밀리고 놋 줄에 묶이게 되었을 때 삼손의 생애가 비참하게 거기에서 끝나야 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삿16:22)한 것이다. 삼손은 이제 그 스스로 하나님과의 나실인의 서원이 필요한 것이다. 삼손은 이제 그 홀로 비참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부르짖는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 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상하게 하사 불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삿 16:28) “불레셋 사람과 함게 죽기를 원하노라”(삿 16:30)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어서 불레셋의 모든 방백과 그 곳에 있는 모든 백성을 죽이고 삼손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마지막 기록은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였다. 사사기의 그 후 기록을 보면 삼손의 지파 단 지파가 기업의 땅을 구하는 사건이 나오고 사무엘을 거쳐 이스라엘 왕국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끝 마치는 말
삼손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삼손은 믿음의 사람, 영의 사람, 애국자, 이스라엘의 사사등 삼손의 긍정적인 모습을 그려 보았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안중근의사와 같이 삼손은 이스라엘의 애국 의사(義士)이기에 사사외에 의사(義士) 삼손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고 글을 마친다.
2007년 11월 2일 안식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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