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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失樂園)에서 구속으로 다시 회복될 복락원(復樂園)까지 이어지는 안식일의 역사적 일관성(一貫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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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失樂園)에서 구속으로 다시 회복될 복락원(復樂園)까지 이어지는 안식일의 역사적 일관성(一貫性)       


창조의 이상 행복의 시간과 공간  - 신계훈 목사 (박사) -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3:4)이시다. 집마다 준공일이 있고 제품
마다 제조일이 있듯이 지구도 창조가 마쳐진 날이 있음에 틀림없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시니라
(2:1~3).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한 안식일의 역사적 기원이며 성경적인 근거이다.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은
결혼제도와 더불어 창조와 동시에 분명한 목적과 필요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제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날 마지막으로 창조하신 사람을 바로 결혼시키셔서, 생명이 태어나는 요람이요,
행복을 경험하는 안식의 공간(空間)인 가정이라는 안식처(安息處)를 마련해 주셨다. 그리고 그 여섯째
날 해가 지면서 시작된 제칠일을 안식의 시간(時間)으로 성별하심으로써, 거룩한 시간과 행복의 공간
이 서로 만나 이루어지는 숭고한 창조의 기념관에서 인류 창조의 영원한 이상을 실현하려 하셨다.
러므로 창조의 처음 안식일은 아담과 하와에게는 허니문[蜜月]이었으며, 동시에 인간의 역사는 안식
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주권과 예배의 근거인 창조
부모가 될 수 있는 자격은 자식을 낳았다[出産]는 데 있고, 자녀들로부터 합당한 존경을 받는 것이
마땅한 권리도 역시 그들을 낳았다는 데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되실 수 있는 자격은 창조(創造)
에 있고, 인간을 다스리시는 주권(主權)의 근거도, 인간에게서 합당한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마땅한
까닭도 창조에 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
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4:11).
그러므로 창조하지 아니한 신은 하나님이 아니며, 창조하지 않았으면서도 경배를 받으려는 신은 거
짓 신이요, 우상(偶像)인 것이다(40:18~25). 그러므로 창조를 기념하는 안식일을 통하여 경배를 받
으시는 하나님만이, 창조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참 하나님이신 것이다(31:13; 20:12). 그것이
넷째 계명에 명시된 바, 사람이 안식일을 기념해야 할 이유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20:8~11).

2의 창조인 구속
그러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의 이상(理想)은 개어지고, 주권은 침해를 당하였고 인간은
불행과 죽음에 처하게 되었다. 자식에 대한 드높은 이상을 실현하고 그들의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 부
모의 염원이듯, 하나님께서도 창조의 이상을 실현하고, 짓밟힌 주권을 회복하고 빼앗긴 인간의 행복을
되찾아 주시려는 열렬한 소원으로 구원의 계획을 발표하셨다(3:15). 이 계획이 구약의 역사에서 실
(實證)된 것이 출애굽 사건이요, 신약에서 성취된 것이 십자가인 것이다. 그것이 제 2의 창조인 구
(救贖)인 것임을 다음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
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였느니라.(5:15)

창조와 구속의 기념일
이리하여 본래는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이, 출애굽을 통하여 해방을 경험한 이스라엘에게는 구원
〔救贖〕의 기념일로서 새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것은 마치 광복절로 기념되는 해방이 없이는, 개천절
로 기념되는 개국(開國)도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 즉 본래 지구 창조의 기념일[개천절]이었던 안식일
이 동시에 구속의 기념일[광복절]로서의 의미를 함께 지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창조 당시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2:1)는 창조선
언이 있었듯이, 안식일이 거의 되었(23:54)던 같은 시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
류를 죄에서 해방시키신 후, 다 이루었다(19:30)는 구속(救贖)의 선언을 통하여 확인하고 있다.
또한 구약의 역사적인 구속(救贖)인 출애굽은 성력 114일인 유월절, 곧 무교절 안식일이 시작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양을 죽여 피를 바름으로 이루어졌다(12:1~11).

그 후 신약에서 같은 유월절이며, 동시에 제칠일 안식일이 시작되는 같은 시간에 예수께서 십자가
에 유월절 양으로 돌아가심으로써(19:31), 안식일이 창조와 구속(救贖)을 함께 성취시킨 역사적인
기념일임을 확증하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바로 그 주일에,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23:56)는 기록은 십자가 때문에 안식일이 결코 단절(斷絶)되지 않았음을 확신시키려는 복음서의
의도인 것이다.

순종의 시금석(試金石)
출애굽의 목적은 구속(救贖) 곧 죄로부터의 해방이 있었으며, 해방의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본분인 예배에 있었다(4:22, 23, 5:1, 3, 8:27, 10:8, 9, 25, 26). 이 목적은 출애굽과 동시에 실현
되었다. 그리스도를 상징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속량(贖良)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즉시 사람의
본분인 예배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기적의 양식인 만나를 내리실 때 제 6일에는 두 배
를 거두게 하시고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으심으로써, 안식일에는 애굽에서처럼 먹고 사는데 얽매인 종
살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임을 가르치셨다(16:23~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에도 육신의 양식인 만나를 거두러 나간 백성들을 견책하시며, 어느 때
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6일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16:28, 29)임을 밝히셨다.

이와 같이 십계명이 있기 전부터, 안식일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순종심을 시험하는 시금석(試金
)이 되었다. 그리고 십계명이 주어진 후에도, 안식일 준수의 의미는 더욱 강화되어,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의 대대의 표징(表徵)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31:13)고 재확인하셨다.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안식일 준수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구약시대의 안식일
이러한 안식일 제도의 중요성은 그 후 선지자들을 통하여 부단히 강조되었다(56:6, 7, 58:1, 3,
14, 66:23; 17:19~27).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은 했어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쓰러지고, 또한 후에 바벨론으로 다시 포로 되어 간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안식일을 무시하고 고
의로 더럽힘 때문이라고 명시되어 있다(20:10~13, 16:24; 17:27; 9:13~17).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로서 구속주가 되셨으며, 십계명의 입법자로서 창조와 구속의
기념일인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선언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와 안식일
약속된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태어나심으로 시작된 신약시대는 안식일 제도에 어떠한 변화나 새로운
의의(意義)를 가져 왔는가? 예수께서는 친히, 인자(人子)는 안식일의 주인(2:28; 12:8) ,
안식일의 주()라고 선언하심으로써, 구약에서 거듭거듭 여호와의 안식일, 나의 안식일(
20:10; 5:14; 58:13)이라고 선언하신 그 여호와 하나님을 당신자신과 동일시하셨다.

뿐만 아니라 당신을 안식일의 주(lord)라는 말씀으로, 안식일에 관한 당신의 주권을 강조하심으로
, 당신의 권위를 불신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천명하신 것이다. 이에 대한
반응을 주목하여 보자.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 아니라 하
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同等)으로 삼으심이러라(5:18).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하셨다고 고발된 것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까지도 정죄한 바리새인들의
전통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신약 학자인 전경연 씨도 이 사실을 아래와 같이 확인하
고 있다.

예수는 안식일 그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고, 유대인 사회에서 안식일을 까다롭게 만든
율법 학자들의 궤변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3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최고의 주권자로서 안식일의 본래 목적대로 인간을 죄의 속박에서 풀어주시
, 행복을 되찾아 주시기 위해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등 재창조의 능력을 주로 안식일
에 드러내셨다(12;11~13; 13:10~17, 14:1~6). 이와 같이 예수께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안식일에 대한 당신의 주권(主權)을 주장하시고,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심으로 창조주
로서의 신분을 밝히신 것 이상으로, 안식일의 중요성을 어떻게 더 강조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신학적 배경을 오해하여, 마치 예수께서 안식일을 무시하여 고의로 범하신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그 당시 안식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곡해(曲解)를 또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일요일을 주일로 옹호하고 있는 현대 신학자인 주이트(Paul K. Jewett), 예수님은 안식일 제도
그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고 단지 안식일을 지키는데 대한 장로들의 유전을 거부한 것뿐이었다.4
예수님은 결코 안식일을 폐지하지 아니하셨다5고 시인하고 있다.

# 증언 주이트
사도들과 초대 교회가 그러했던 것 같이 예수는 구약을 성서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구약성서는 안식일을 최고의 윤리 법전인 십계명에다 두고 있으며, 이스라엘
이 안식일을 영원한 언약으로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6

예수께서는 인간의 전통에 짓밟혀 본래의 의의를 상실한 안식일을 회복하시기 위해 생명의 위협을
불사(不辭)하셨다. 참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위해 누가 생명을 거는 어리석은 일을 하겠는가? 또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4:16)
는 등 어린 시절부터 습관적으로 안식일을 준수하셨음을 뚜렷한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이 안식일의 존속(存續)을 결코 단절(斷切)시키지 않았음을 확인시
키기 위해 이방인을 위해 쓰인 복음서인 누가복음에는 무덤에 장사되셨던 그 안식일에도 예수님을 따
르던 사람들이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23:56)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스도의 예언과 안식일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로 안식일 제도가 약화되는 대신 더욱 강화되었음은 그것이 창조의 기념에
서 구속(救贖)의 기념으로 증폭(增幅)되었음과 더불어 확고해졌음이 다음의 사실로도 확인된다. 서기
31년 십자가에 달리시던 마지막 주간에 감람산에서 행하신 고별설교에서, 당신을 거절한 예루살렘의
운명을 미리 내다보시고,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피할 길을 가르쳐 주시면서, 너희의 도망하는 일
이 겨울에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24:20, 21)고 예
고하셨다. 예고된 예루살렘의 멸망은 불가피할지라도(9:26), 그리스도인들이 찬 비가 내리는 음산
한 팔레스틴의 겨울에 불어난 요단강을 건너 피난하는 어려움과 함께, 거룩한 안식일에 피난하는 일
이 없도록 미리 기도드리라는 간곡한 말씀이다.

과연 예언 그대로 서기 709월 로마군에 의한 오랜 포위 끝에 예루살렘은 함락되어 100여만 명
이 기근과 칼로 죽임을 당하는 대파멸을 겪었다.7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경고하신 말씀을 따라 사전
에 요단강을 건너 펠라(Pella)지방으로 피난하여 멸망에서 벗어났다. 십자가 이후 거의 40년 만인 서
70년에 있는 예루살렘의 대파멸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할 안식일임이
주님에 의하여 확인되었다면 그 이상의 논증이 필요 없지 않은가?

사도시대의 안식일
서기 49년경에 열렸던 그리스도교 제 1차 세계총회 격인 예루살렘 회의에서는 사도들의 전도로 복
음을 받아들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야기된 교리적인 문제들이 다뤄졌다. 그 때에 유대인들에
게만 해당되는 의식적인 율법인 할례문제는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15:7) 폐지하기로 결의하였
(15:19~21).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던 안식일 준수 여부는 거론도 되지 않았다. 그 이
유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지 여부가 거론되지 아니한 이유와 같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기정(旣定)
사실은 아예 취급하려 하지도 않은 것이다(15:5~11).

이와 같이 사도시대 동안도 제칠일 안식일이 변함없이 준수되었음은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행적
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그는 주님의 본을 따라 이방 땅에서도,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17:2)하였고, 안식일마다그렇게 하여(18:1~4, 11,
13:14, 42~44, 16:12, 13), 사도행전에만 84회의 안식일 준수가 함축되어 있다.8

만약 안식일이 이방인에게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의식적인 율법이었다면,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
이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 제칠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어진 사실을 분명히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다(20:27)고 고백한 바울은, 의식적인 율법인 할례
는 한사코 반대했으면서도 안식일은 자신이 먼저 준수하여 솔선수범했다(21:20~24).

마지막 때와 안식일
이 세상에 보내는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요, 탄원인 요한계시록의 세 천사의 기별에는 안식일과 직
접 관련된 중대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
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14:6, 7).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창조주로서 합당한 경배를 받으신다(43:7). 그러
므로 창조주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리고 합당한 경배를 드리는 일은 사람의 본분이요, 이에 대하
여 각 사람은 책임을 지는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안식일의 목적이 바로,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20:11)셨음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
께 경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이러한 본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이 마지막 시대의 성도, 하나님의 계명
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14:12)로 특징지워져 있다. 이와 같이 마지막 때의 심판과 안식일이
직접 연관되어 있음을 주목할 것이다(56:1, 2).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12:13).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안식일
이사야 선지자는 계시록에도 나타난 회복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매 안식일에 모든 혈
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66:23)고 기록했다. 또한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
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는 사람들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뿐만
아니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58:13, 14)는 영원한 축복을, 여호
와의 입의 말(58:14)임을 단서로 약속하였다.

이리하여 죄로 잃어버린 실낙원(失樂園)에서 구속으로 다시 회복될 복락원(復樂園)까지 이어지는 안
식일의 역사적 일관성(一貫性)은 성경 전체에 일목요연하게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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