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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의 도벽을 고친 할머니와 제자의 도벽을 고친 선생님! - 박옥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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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의 도벽을 고친 할머니와 제자의 도벽을 고친 선생님!***

“남의 것을 훔치는 손은 화저(火箸)로 지져야 한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5월의 어느 날, 보슬보슬 가랑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그 날은 대청소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청소가 다 끝나고 어린이들이 다 돌아간 교실에 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종례시간에 내가 한 말을 되새겼다. “사람은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을 회개하면 바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라고 얘기하였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들은 프랑스의 어떤 소년의 얘기를 하였다.


        그 소년은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자라났다. 도벽이 있었으나 그 도벽을 고치지 못하였다. 어떤 날 그 소년이 다시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할머니는 난로 불에 화저(火箸)를 벌겋게 달구었다.

        “남의 것을 훔치는 손은 화저(火箸)로 지져야 한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어린 소년은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마침내 할머니가 그 벌겋게 달구어진 화저를 꺼내셨다. 할머니는 그 화저(火箸)를 자기의 손바닥에 놓았다.

        “이 할미가 너를 잘못 길러서…….”

살 익는 냄새와 함께 소년은 할머니를 붙들고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 할머니, 다시는 안 그렇게 하겠어요.”

그리고 그 이후 소년의 도벽은 영영 없어졌다. 할머니의 사랑은 마침내 승리한 것이다.


        또 한 얘기를 해주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에 대한 얘기였다. 아버지가 애지중지 하시던 관상(觀賞)용 나무를 잘랐던 얘기……. 아버지가 노발다발하시며 범인을 찾았을 때 워싱턴은 정직하게 자기가 그랬다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그의 정직함을 기뻐하셔서 용서하셨다는 그 유명한 얘기를 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지만 뉘우치고 정직하게 고백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워싱턴 대통령도 정직하였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오늘 아침 아이들은 300원씩 학비를 내야 하였다. 아이들이 가져온 돈을 한 사람씩 받고 돈을 헤어보고 기록을 하고 틀림없이 했는데 총계를 맞춰보니 300원이 모자랐던 것이다. 그래서 얘들아 지금 너희들이 낸 돈에서 300원이 모자라니 어디 발견하면 선생님에게 갖다 다오.” 하였다. 그런데 청소하는 중에 한 어린이가 돈 300원을 내게 가져왔다. 청소하다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비는 보슬보슬 이슬비로 내리는데 창밖을 내다보고 혼자 앉아 있으니 문을 살며시 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돈을 주웠다고 갖다 주던 순남이였다. 나는 의외의 어린이인지라 내심(內心) 놀랐다. 왜냐하면 순남이는 모범생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하면서 순남이가 울먹이면서 하던 얘기가 이러하였다.

        아빠, 엄마한테 내일 아침에 학교에 300원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돈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침에 엄마가 부엌에서, “여보, 오늘 씨앗을 사야 되는데 하니까 아빠가 , 그래?” 하더니 조끼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어머니한테 주시더란다. 그래서 아빠가 세수하러 나가신 사이에 아까 아빠가 돈을 꺼내시던 조끼 주머니를 살펴보니까 돈이 들어 있기에 그중에서 백 원짜리 3장을 꺼냈다. 그리고 학교에 와서 선생님한테 바쳤다. 그러나 바치고 나자 아빠가 300원 없어진 것을 아시면…”하고 번개같이 그 생각이 떠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선생님이 자기 이름을 적고 있는 사이에 도로 300원을 집어서 제 자리로 돌아갔는데 선생님이 총계를 세어보시고 300원이 모자란다고 하시며 발견한 사람은 갖다 달라 하시니 더 견딜 수가 없어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나는 순남이를 데리고 나의 자취하는 방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고 지우산을 같이 받고 순남이네 집으로 걸어갔다. 좀 떨어져 있는 거리였으나 이야기하면서 걸어갔다. 아직 어린 순남이가 어제 저녁부터 혼자서 고민해온 일을 생각하니 애처로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순남이 집은 언덕진 곳에 있었다. 조그만 초가집이었다. 순남이 어머니는 아주 젊었다. 순남이는 맏딸이었고 아래로 남동생이 둘 있었다. 그 어머니와 앉아서 얘기를 해보니 참 딱한 사정이었다. 일본에서 살다가 해방이 되어 나왔는데 별 신통한 직업도 구할 수 없어 남편의 날품팔이로 살아가는데 그래서 아이에게 제 때에 학비도 잘 못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앞으로 형편이 어려우실 때는 미리 제게 연락을 해주십시오. 그러면 길이 열릴 것입니다. 순남이는 좋은 아이입니다.”


        그 후로 순남이는 참으로 충성된 생활을 했다. 충심으로 모든 일에 자원하여 공부에나 학급 일에나 최선을 다하였다. 나는 좋은 제자를 얻었던 것이다.


***은혜 충만한 박옥종 집사님의 자서전 "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3부 고난의 세월에 실린 글***

***kasda.com 칼럼과 글동네 검색에서 그 영광의 빛 속으로를 치면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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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광의 빛 속으로 - 박옥종 (kasda.com 칼럼과 글동네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5 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5부 감사의 노래 - 박옥종 정무흠 2013.06.19 736 4 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4부 침례! 새출발! 인생역전! - 박옥종 정무흠 2013.06.19 718 3 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3부 한국 동란! 고난의 세월! 가난 속에 핀 꽃 - 박옥종 정무흠 2013.06.19 3065 2 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2부 행복한 결혼! 해방! 아들, 딸의 출생!- 박옥종 정무흠 2013.06.19 6881 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1부 출생과 배경- 박옥종 정무흠 2013.06.19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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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진하 2013.10.19 13:55 정무흠 목사님. 제가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일찍 함께 잠을 자자고 조르는 바람에 저녁 9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 1시쯤 잠에서 깨어 정목사님이 올려 놓으신 어머님의 자서전같은 글들을 4시간여 읽었습니다. 구구절절.... 진심과 정직, 하늘을 향한 끊임없는 믿음, 윗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와 자녀들에 대한 지극함,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언제나 반듯하게 살아 오신 어머님의 삶이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최근 들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남의 글들을 읽은 적이 없었는데 정말 정목사님의 어머님의 글은 결코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진지함과 더불어 흥미를 갖게하는 놀라운 힘이 있었습니다. 훗날, 하늘에서 정목사님의 어머님을 뵈올 것을 생각하며 이 새벽 어머님을 사랑하시고 정목사님의 가족들을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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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원 2015.04.20 02:35 그 삶의 무거운 짐, 불면의 날들, 그 온갖 슬픔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연약한" 딸을 부르는 "인자한 그 음성". 애끓는 그 어머니의 슬픔을 이긴 삶은 자녀의 푯대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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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투신자에게 인술베풀고, 흥분된 군중과 경찰로부터 간호사를 보호한 의인! 허시모 의료 선교사!***
 (반미적이던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과 재림교회의 성장을 질시하며 '안식교 이단' 마녀 사냥하던 빗나간 일부 종교인들과 민족주의 감정에 편승한 언론 보도로 왜곡 보도된 허시모 사건을 재조명 할 필요가 있다.) 

*미국 포틀랜드 위생병원에서 수년간 근무한 유능한 의사였던 허시모 선교사는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기 위해, 부모형제를 떠나 언어와 풍속이 다른 가난한 일본 식민지 조선에 선교사로 나온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열차 투신자를 면밀히 살피고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차장에게 강력히 요구하여 그 부상자를 열차에 태워 평양까지 호송하여 무료치료하여 살려준 인술을 베푼 의료 선교사 허시모, 간호사가 조선의 흥분된 군중과 경찰에 의해 크게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염려되어 병원장으로서 도의적인 전적 책임을 지고 끝까지 침묵을 지킨 의롭고 정직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 허시모 의료 선교사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고 신원을 회복시켜주어야 한다! 공명정대한 하늘 법정 조사심판(재림전 심판 때,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허시모 의료선교사의 변호사가 되어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시고 신원을 회복시켜 주시며, 첫째 부활에 참여하도록 축복해주시기 바란다. 이런 분들을 위해 조사심판(재림전 심판)이 꼭 필요한 것이다.* 
***허시모 사건의 진실*** 
"허시모 사건의 실제적 진실은 신문에 처음 폭로 보도되고 그 보도내용이 그대로 역사책에 수록되어 후세에 알려지게 된 내용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먼저 잘못 알려졌거나 숨겨진 사실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허시모는 1925년 3월 의료선교사로 내한하기 전 미국 포틀랜드 위생병원에서 수년간 근무한 유능한 의사였습니다. ​한국에서의 활동 중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가 <교회지남,1926.2.>에 실려 있어 소개하면, 1925년 6월경 허시모는 기차를 타고 평양을 향하던 중 한 조선인 남자가 갑자기 기차에 뛰어들어 투신하는 사고를 경험하였습니다. ​다들 투신자가 죽은 것으로 여기고 다시 기차를 출발시키려고 하자 허시모는 피투성이가 된 투신자를 면밀히 살피고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차장에게 강력히 요구하여 그 부상자를 열차에 태워 평양까지 호송하였습니다. ​이 장면을 감명 깊게 지켜보던 한 승객은 나중에 병이 들자 허시모가 근무하는 순안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을 뿐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여 신자가 되었다 합니다. ​여기에서의 허시모는 냉정한 인종우월주의자로 치부하기에는 다른 일면입니다. 2. 소년 김명섭은 ‘한 차례’가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침입하여 사과를 절취하였으며, ​허시모와 간호사 임신일은 사과를 훔치는 소년을 붙잡아 막무가내로 얼굴에 글자를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에게 2주후 깨끗이 소실된다는 설명과 함께 동의를 얻은 후에 쓴 것입니다. 3. 얼굴에 글씨를 쓴 이유는 “평생 동안 얼굴을 들지 못하는 병신으로 만들” 마음이 아니라 따끔한 징계로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으며, “염산이라는 독약”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피부 자극이 훨씬 약한 "질산은"(silver nitrate)을 사용하였습니다. ​피부를 괴사시키는 염산과는 달리 질산은 용액은 의료용으로 많이 사용되는데, 1% 질산은 용액은 신생아결막염을 예방하기위해 신생아에게 점안액으로 주로 사용되며 ​20% 용액은 신생아 배꼽에서 장액이 나오는 신생아 제용종의 소작에 사용됩니다. ​이런 농도의 질산은 용액이 피부에 닿으면 피부표피에만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 검게 변하는데 그 검게 변한 피부조직은 2주정도 지나면 흔적 없이 깨끗이 소실됩니다. ​허시모가 질산은으로 얼굴에 글씨를 쓴 행위는 허시모의 입장에서는 유성펜으로 얼굴에 글씨는 쓴 정도로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내용이 소상히 보도되었다면 조선 백성이 그처럼 격분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4. 또 하나의 문제는 간호사 임신일의 역할입니다. ​당시 재판의 ‘판결문’에는 간호사는 옆에서 관망만 하였다고 하는데, ​간호사의 적극적인 도움 없이 내한한지 5개월 남짓한 미국 선교사가 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기에는 조선말과 글이 능숙하지 못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간호사 임신일의 통역을 통해 일이 진행되었을 것이지만, 그녀가 한국의 ‘서리 문화’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선교사의 행동에 제동을 걸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이에 대해 서울위생병원 원장을 역임했던 이근화 씨는 1958년에 미국에서 허시모를 만나 당시 사건에 대한 뜻밖의 증언을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허시모의 말에 의하면 “당시 순안병원에서 자신을 보필하던 간호사가 소년의 양쪽 뺨에 도적이라는 글씨를 썼으며, 그녀가 간호사였기에 병원에서 사용하는 질산은을 사용한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여론화되었을 때 사실을 그대로 밝히지 못했던 것은 책임이 간호사로 밝혀졌을 때 그 간호사가 조선의 흥분된 군중과 경찰에 의해 크게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염려되어 병원장으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는 것이었습니다." 
***google.com 에 실린 "허시모 사건의 진실" 중에서 퍼온 글***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선교 100년사, 오만규, 시조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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