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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적 신앙, 문자적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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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적 신앙, 문자적 신앙****

예수를 체험하고 믿는 사람도 있고
문자적으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통해서 접근한 분도 있고
예언의 해석에 의해서 인정한 분도 있습니다.
그냥 다니는 분은 없는가요?
아마 있을 겁니다.

갈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이 말씀은 바울이 할례에 대한 설명을 한 후에 한 말입니다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억지로 할례를 믿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심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을 면하기 위해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논리에 대한 답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할례만 받으므로 육신만 자랑하는 율법주의자들에게
바울은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자랑이며 그것만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새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으라고 축복을 합니다
그런 후에 즉 그 후에는 이런 할례로서 나를 괴롭히지 말라
나는 할례의 표적보다 더 좋은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예수의 흔적이 뭘까요?
바울이 가졌다는 그 흔적이 뭘까요?
우리는 설교시간에 몇 가지를 듣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우리 개인들이 가진 예수와의 약속의 흔적일 겁니다.

어떤 분들은 병에 걸려서. 그리고 그 병이 치유됨으로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이 있거나 간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 병이 흔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좋은 신앙은 병 걸리기 전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더 좋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은데.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신앙 생활한다면
답답한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남이 주지 않고 내가 체험한 예수의 흔적을 가질까요?
복음이 우리를 체험의 도장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을 믿는 광신자들은 많지만 제대로 복음을 아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복음을 알아야 하나님이 깨달아지고 체험이 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의 흔적을 가져야 예수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한다고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욕심으로 가득 찬 기도는 이해에 오히려 지장만 초래합니다.
이런 기도는 종교기도가 되며 방향 상실의 기도가 되는 겁니다.

신앙생활에 감사가 넘치면 삶도 젊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체계가 잡혀지지 않으니 신앙이 복잡하게 됩니다.
그럴 경우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야하기에 고달프고 힘들고
한계 속에 묶이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어렵던 일들이 쉽게 느껴져야 합니다.
그런데 애쓰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자종교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종교보다도 복음을 주셨는데
사람들은 복음을 종교로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바울이 붙잡은 최고의 지식
그리스도라는 이 복음에 우리는 인생을 걸었고
이 신앙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최고의 전도자로. 승리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 감취어둔 하나님의 복음.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복음은 체험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언에 기초한 신앙은 그 예언의 해석이 달라질 적마다 부침을 계속합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이 예수를 접하고 단번에 변하듯이
우리도 다메섹 도상을 자주 만나야 합니다.

**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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