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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공모 우수 당선 수기 - 재림교회 신자가 되다니! 

조윤혜(전 극동방송 안나운서), 전 미주 과학자 협회장 이용락 박사(서울 공대 출신) 부인



10여 년 전 일이었다. 친구가 자기 남편 생일이라며 우리를 초대한다는 전화를 했다. 

시카고에 와서 20여 년 사귀는 동안, 친구의 남편 생일에 초대받아 보긴 처음 있는 일이어서 좀 어리둥절했다. 


나는 농담 삼아, "아니, 이젠 남편 생일도 챙길 줄 알고, 철났네. 그러지 말고 무슨 일이야? 내가 언제 그 집에 오라면 안 갈까봐?" 그랬더니 

"사실은 남편 생일 핑계로 모여서, 좋은 설교 좀 들어볼려구. 미시건에서 유명한 목사님이 오실거거든. 아무튼 꼭 와서 들어보라구. 꼭 와야 해."


느닷없이 웬 목사님? 목사님이라면 시카고에도 얼마든지 많을텐데, 왜 미시건에서까지 목사님을 모셔와 설교를 들어야 해? 이건 너무 엉뚱한 착상이 아닌가?


친구는 다른 집에도 연락을 해야 한다며 얼른 전화를 끊었다.


어떻든 가 볼 수밖에!

며칠 후 약속된 날짜가 되어서 친구 집에 도착해보니, 아직도 눈덮인 잔디 위까지 자동차가  꽉 들어차서 파킹하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을 얼마나 초대한 걸까? 집 안에 들어가 보니, 아는 얼굴들, 모르는 얼굴들이 이 방 저 방 가득했다.


친구는 우리 부부를 보자, 얼른 미시건에서 오신 목사님께 인사를 시키겠다고, 응접실로 끌고 갔다.

"목사님, 제가 말씀드린 친구 부부예요. 인사하세요."

"신계훈이라고 합니다."

"저는 정무흠 목삽니다."


처음 뵙는 낯선 두 목사님과 대강 인사를 나누고, 얼른 아는 얼굴들을 찾아 옆방으로 들어갔다.

낯선 목사님들보다는, 오랫만에 보는 사람들이 더 반갑고, 푸짐하게 차린 상 위로 관심이 쏠렸다.


저녁을 먹기 전, 모두들 한자리에 모이라고 해서, 우리 모두는 응접실로 가 앉았다.

신계훈 목사님이라는 분이 일어나셔서 간단한 본인 소개와, 이곳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 말씀을 하신 후, 식사 기도를 해주셨다.

그리고, 저녁 식사가 끝난 후에, 다시 모여 말씀을 주시기로 하고, 곧 식사가 시작되었다.


아무리 봐도 뭐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데, 놀러와서까지 설교를 꼭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자꾸만 거부감 같은 것이 느껴져 기분이 편치 않았다.


떡 벌어진 잔치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서, 오랫만에 만난 사람들과 정담을 나눌 사이도 없이 또 모이라고 했다.

설교라면 일요일에 교회 가서 듣는 것이지, 무슨 생일 잔치 집에서까지...왠지 심사가 뒤틀렸다.


마침 그날 음악회 초대장도 받은 터에, 우리 부부는 거기에나 참석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슬쩍 친구 집을 빠져 나와, 음악회 장소로 차를 몰았다.


음악회는, 늦게 가는 바람에 한 곡이 끝나고 나니까 휴식 시간이 되어 모두 밖으로 나왔다.

마침 초대해준 분을 만나 인사를 하고, 2부 순서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 왠지 이상하게, 자꾸만 못 듣고 온 설교가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꼭 들어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는데...아무래도 다시 친구네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음악회장을 빠져나와 헐레벌떡 달려가보니, 이미 설교가 끝나고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나오고 있는 사람들에게, "설교 들어 보셨어요? 어땠어요?" 하고 물으니 

"아주 좋은 설교를 놓치셨네요." "말씀이 참 특이했어요. 한번 들어 보셨으면 좋았을 걸요."하는 것이 아닌가.

아뿔사! 모처럼의 기회였는지도 모르는데....

어떻든 서둘러 들어가 보니, 목사님들과 사람들은 거의 다 갔고, 마침 녹음된 테이프가 있다고 친구가 주었다. 꼭 들어보라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테이프를 듣기 시작했다.

신계훈 목사님의 설교 제목은 "당신은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였다.

'구원'이라는 말은 우리 장로 교회에서도 귀가 아프게 들어왔었다.


특히 장로교 교리인 예정설을 믿는 데다가, 예수를 구주라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과거의 죄는 물론, 앞으로 지을 죄까지 이미 용서받았다고 믿고 살아왔었다. 그래서 장로 교인들은 비교적 신앙인으로서 큰 고민없이, 구원받은 확신으로 행복한 마음을 소유하고 사는 편이다.


그런데 뜻밖에, 신계훈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들으면서, 뭔가가 우리의 뒤통수를 세게 내리치는 충격을 받았다. 놀란 가슴은 두근거렸고, 두려운 마음에 숨이 차 오는 것을 느꼈다. 애써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뭔가 늘 석연치 않았던 죄 문제, 순종 없는 믿음, 입으로만 시인하는 믿음, 구원에 대한 막연했던 불안이 확실하게 인식되어져 왔다. 


아! 그것이었다. 신계훈 목사님은 '믿음'이라는 허상만 있고, '순종' 의 실천을 몰랐던 내 신앙 생활, 사랑과 순종의 실천이 없었던 나의 믿음 생활을 지적해주고 있었다. 교회 생활 20여 년, 아무도, 누구도 깨우쳐 주지 않았던 저 확신에 찬 설교 말씀. 차츰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가슴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한 말씀, 한 말씀, 마음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쉴새없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친구에게 전화해서, 그 목사님을 다시 한 번 뵐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리고 신 목사님이 누구신지 궁금해서 이것 저것 물어 보았다. 


안식일 교파 목사님이시다? 아니 이럴 수가! 왜 이단 교파 목사님이 알고 계신 진리를 장로 교회 목사님들은 모르고 있었는가? 그리고 이런 말씀을 가르치는 교파가 왜 이단이어야 하는가?


그래 좋다. 이단이건 아니건 그건 내개 중요하지 않다.

이와 신앙을 가지려면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해야 이런 목사님을 모시고 성경 공부를 할 수 있는지 친구에게 물어 보았다.

드디어 신 목사님이 한 달에 한 번 시카고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게 되었다.


옛날 냐갸 어렸을 때, 이웃에, 딸과 함께 외손자(호제) 하나를 기르시며 사시던 친척 아주머니가 계셨다. 

어느 날 우리 어머니가 "호제 할머니는 이상한 교회를 다닌다는데, 무슨 안식교래나 하는 덴데, 그 교회에서는 돼지고기하고, 새우젓을 못 먹게 한다는구나. 참 이상한 교회도 다 있지." 하시던 얘기를 들었었다. 그때 처음으로 안식일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셈이었다. 나는 속으로, '교회가 그리도 많은데, 애 하필이면 그 맛있는 음식을 못 먹게 하는 교회를 골라 다닌담. 이상한 아주머니네.' 했었다.


그리고 먼 훗날 우연히 들은 얘기로 돼지고기에는 나쁜 병균이 많아 무서운 병을 유발시키기 쉽고, 새우는, 물에 빠져 죽은 시체에 새까맣게 붙어 있더란 소리를 듣고, 아! 그래서 성경에 돼지고기와 새우 등을 불결한 음식이라 한 것이 아닌가 이해해 보았다.


그 후 시카고에서 40여 명이 6개월 동안 신계훈 목사님을 모시고 성경  공부를 하게 되면서, 차츰 말씀의 진수와 안식일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해 여름 우리 부부와 그 친구는 처음으로 동부 야영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강당에 모여든 안식일교인들이 어찌나 많은 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단 안식일 교인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첫날 첫 시간부터, 주옥같은 말씀들로, 20여 년 교회 생활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성경 해석들로 가슴이 벅차왔다. 시간마다, 강사 목사님들의 너무나도 확실하고 분명한 말씀들로 마치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된 느낌이었다. 특히 김기곤 목사님의 사도행전 강의는 너무 재미있어,  오후에 관광도 마다하고 그 시간에 들어갔었다. 새벽 기도회 시간부터 저녁 강의 시간까지 한 시간도 빠질 수 없어 강행군을 했는데도 피곤한 줄 몰랐다.


이단 교회라고, 쳐다보기도 거부했던 교회가 아니었던가? 누가 이 교회를 이단이라 부르기 시작한 걸까?


우리 부부는 이 야영회에서 침례를 받고자 하는 결심이 굳어갔다.

그런데 의외로 함께 참석한 친구는 자꾸 뒷걸음질이었다. 수요일 낮, 우리 모두 시카고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아니 듣다 말고 왜 돌아가겠다는 게냐? 우리는 안 가겠다고 우겼다.

그러면 갔다가 다시 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막상 우리 부부가 침례받겠다고 하니 불안해 하는 것이었다.

성급한 결정으로, 이단 교인이 되는 것이 마치 자기 책임인 양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의 결심은 더 확실해졌다. 

우리의 완강한 결심을 보고, 친구는 시카고로 돌아갔다가, 금요일 저녁 남편과 함께 야영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다음날 안식일 오후에 우리 부부는 침례를 받았고, 친구 부부는 우리를 축하해주었다.


침례받고, 시카고로 돌아와서 다니던 장로 교회에 일년 직책이 끝날 때까지 얼마 동안 양쪽으로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예배일이 다르니까, 그런데 일요일이 되어서 막상 교회에 가려니, 이건 너무나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다니던 장로 교회 목사님께 편지로, 그동안에 있었던 모든 얘기들, 즉 신계훈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한 얘기, 구속과 안식일 진리를 찾은 얘기, 침례받은 얘기 등, 이제부터 우리 부부는 안식일교회로 옮겼다는 내용을 자세히 적어서 통보하고, 약속했던 건축 헌금을 계산해서 한꺼번에 동봉해서 보냈고, 끝을 내고 말았다.


그 후 일년 동안, 그 교회 주보가 계속해서 배달될 뿐만 아니라, '이단 안식교 진상'이란 책자가 배달되 오기도 하고, 사교에 빠진 우리 부부를 위해서 온 교인들이 기도하고 있다는 메시지도 보내오고 했지만, 우린 흔들리지 않았다.


한동안 모든 친구들과도 멀어진 소외감으로 외로움을 느꼈지만,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이 안식일 교회에서도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겠지 하는 기대가 있어서였다. 


그때 마침 이상구 박사님 일행이 건강 집회를 마치고, 시카고를 방문하셔서 주말 집회를 했다. 이 지역 안식일 교인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 집회에 참석했다. 겅강과 성경 말씀을 연결해서 들려주시는 이 박사님의 강의는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해주었다. 우리를 안식일교인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에 다시 한 번 뜨겁게 감사했다.


시카고 지역에 한인 안식일교회가 네 개 있었는데, 우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서북 교회로 나가기로 정하고, 금요일 저녁 예배에 처음 참석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20여명이 모여 있었다. 우리가 다니던 교회의 교인 500여 명에 비해 너무 적은 숫자가 아닌가? 속으로 너무 놀랐지만, '그렇지, 하늘나라 문은 좁다고 했는데.' 싶었다.


가끔 옛날 교회 친구들로부터 전화로 문의를 받았다.

"그래 안식일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생겼어? 우리와 다른 점이 뭐야?"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안식일교인들, 모두 너무 수수하고, 착하고, 순수해."

우리는 정말로 그렇게 느꼈다.


담임 김상래 목사님께 매주 수요일마다 집에서 말씀을 배우고, 금요일 저녁 예배, 안식일학교 순서, 그리고 설교  예배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들을 깨달으면서, 감격, 또 감격했다. 우리는 비로소 영혼의 방화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축복 속에 행복해 했다.


그리고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인간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엄청난 시련도 있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안식일을 붙잡고 있다. 그 길만이 우리가 갈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정년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이유를 깨닫기까지 이렇게 오랜 세월이 나에게 필요했었나 보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미주 시조사 설립 20주년 기념 현상 공모 신앙 간증 모음집 "내영혼에 비친 햇빛"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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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시조사 설립 20주년 기념 현상 공모 신앙 간증 모음집 "내영혼에 비친 햇빛"***

2001년 5월 30일 초판 1쇄 발행

2004년 1월 6일 초판 3쇄 발행

엮은이 송순태, 발행인 오성훈, 인쇄인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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