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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공모 최우수 당선 수기 - "괘씸한 목사 같으니라구..." - 김혜경 (콜롬비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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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공모 최우수 당선 수기 - "괘씸한 목사 같으니라구..." - 김혜경 (콜롬비아 교회)


"괘씸한 목사 같으니라구! 아니 남편 있는 여자를 꼬드겨서는 내게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침례를 줘?"

"......."

"그 따위 교회의 교인이면 그 누구건 간에 절대 내 집에 못 오게 해! 어림도 없다."


나는 남편의 성난 고함 소리를 뒷골이 아프도록 들으면서도 한 마디 대꾸도 못한 채 집을 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아이들을 학교에서 픽업하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나 더 남아 있었다.


"어디로 가나?"

내 마음은 가시덤불로 몹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사정없이 욱신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집을 나와야 했던 내 자신이 슬펐다. 허나 늘 그랬다.

교회와 관계되는 문제로 남편의 기분이 언짢으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그래야 남편의 잔소리와 불평이 길어지지 않으니까...


"주님 저를 지켜주소서! 이 일이 무난히 지나갈 수 있도록 저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옵소서."

오직 기도와 함께 내 아픔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콜롬비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에 처음 와 본 것은 이 교회의 입당식이 있던 

칠년 전이었으나 정식으로 예배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약 3년 전인 1997년 12월 첫 안식일이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평생을 통해 당신의 기별을 셀 수 없이 여러 번 전하시는데 나는 내 생애에 세 번의 기회를 갖게 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처럼 나에게도 하나님은 세 명의 천사를 통해 인도하신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대학시절 어느 화창한 봄날,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캠퍼스에서 난 한 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는 그 봄의 풋풋한 초목처럼 내게 다가왔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우리들의 대화 중에 나는 그가 안식일교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이 내게 기별을 전해주시기 위해 택하신 내가 만난 첫번째 안식일교인이었다.


나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 부모님 밑에서 매월 사월 초파일이면 부모님이 다니시던 절에서 스님들이 와서 집안 가득히 향을 피우고 가족 수대로 각각 등을 켜는 것을 보아오며 자랐다. 그래서 동네에 있던 한 교회당도 무심히 지나다녔고 친구들이 크리스마스 때가 되어 교회에 간다고 수선을 떨어도 나에겐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렸었다. 그런데 안식일교회라니, 그 흔하디 흔한 장로 교회도 아니고 안식일교회라는 단어는 나에게 생소하기만 했다. 그 친구는 그렇게 안식일교회라는 글자만 내 머리 속에 새겨주고는 스쳐가듯 내 기억의 아련한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하나님은 몇 년 후 다시 내게 두 번째의 안식일교인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녀는 '나진희'라는 한국명을 가진 SDA 선교사로 한국에 나와 있었다. 진희로부터 나는 조금 더 안식일교회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교인들은 토요일에 예배를 보며, 토요일 예배 후에 꼭 파트락이라는 것을 하는데 그들의 식탁을 보니 전부 야채였다. 


진희가 끓여준 숙주나물국은 내 평생 처음 먹어본 기이한(?) 음식이었는데 떨떠름하게 먹는 내게 그녀는 서툰 한국말로 자랑스럽게 물었다. "숙주나물국 맛있지요?"


그 후 난그녀에게 시원한 콩나물국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숙주나물국을 애호했었다. 이렇게 진희와 나는 우정을 엮어갔고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일년에 한두 번씩은 근황을 주고받는 귀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이러한 인연들을 갖게 해주시며 하나님은 나에게 진리를 전하시려는 은총을 주셨으나 암흑에 살고 있던 나는 그 깨우침을 터득하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일요일 교회를 건성으로 전전하며 방황했다.


세 번째로 다시 귀한 인연을 맺게 된다. 약 10년 전, 새로 주인이 바뀐 미장원의 주인이 헤어 컷을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을 찾아갔다. 난 내 머리 스타일에 까다로운 편이어서 좀처럼 단골 미장원을 만들지 못했는데, 그 젊은 여주인은 소문대로 정말 내 머리를 내 맘에 꼭 들게 잘라 주었다.


그 후 난 그 미장원을 자주 드나들며 그 여주인과 가깝게 되었는데, 그 여인의 이름은 백명숙, 콜롬비아 안식일교회 교인이며 집사라고 했다. 백 집사의 전도방법은 솜씨 좋은 그녀의 미용 기술만큼이나 뛰어났다. 가끔씩 들를 때마다 그녀가 들려주는 꿀맛처럼 다디단 하나님의 말씀들은 내 마음을 뭉클하고 뜨겁게 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거나 어려운 분이 아니었다. 그분은 늘 내 곁에서 사랑의 눈동자로 날 지켜주시는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차츰 하나님께 마음을 열게 되었고 백집사와 많은 대화를 통해 안식일의 의미를 조금 더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백집사가 나를 교회에 초청했을 때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인도에 따라 콜롬비아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그녀를 만난 지 칠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였다. 


그랬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섭리를 언제, 어디서나, 혹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반드시 성취하심을 또 한 번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세 번째 천사를 통해 내 믿음에 대한 확실한 "쇼부"를 보셨음에 틀림없다. 그때는 지금의 서영우 목사님이 이 교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목회를 시작한 지 불과 몇 개월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나와 몇몇 새로운 구도자들은 목사님과 함께 곧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젊은 목사님이어서 그런지 그분의 성경 연구와 복음의 전파에는 정열과 깊이 있는 순수함이 힘있게 넘치고 있었다.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어느 일요일 교회의 목사님들로부터 전혀 들어본 적이 없던 성경의 진리들을 배우며 난 그제야 참 신앙의 기쁨을 알기 시작했고 아울러 나의 기복 신앙적인 믿음이 잘못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안식일학교 시간에 배우는 말씀 말씀마다 하나님의 진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내렸고, 오랫동안 내가 지녀왔던 신앙의 그릇된 점과 무지함이 한 꺼풀 한 꺼풀씩 벗겨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란 가장 쉽고도 어려운 신앙의 길이라는 것을 깊이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성경 공부가 내 영혼의 차원을 조금씩 높여 줌과 동시에, 머리로만 이해되는 그 말씀들이 나를 간혹 안타깝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주님의 보혈과 십자가의 의미, 그리고 죄와 구속 문제가 내 마음에 진실로 와닿지 않았다. 평생을 죄의 개념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무덤덤하게 아무렇게나 살아온 영혼이 그 진리를 보듬어 안아 모시기엔 너무나도 보잘것 없었다. 그리고 그 진리는 나에게 너무 벅차고 거대한, 내가 넘기 어려운 높은 산처럼 내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나도 언젠가는 그 산을 넘게 될 날이 오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성경 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그렇게 여러 달 공부해 오던 어느날, 우리 새 구도자들은 목사님으로부터 침례 권유를 받았다. 

나는 그 문제를 놓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나는 침례를 받기 위한 모든 준비를 끝냈는가? 나의 믿음은 얼마만큼 자랐는가?'

그리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신앙의 잣대를 스스로 세워 놓고는 그 앞에서 아무리 발돋움하고 섰어도 그 키는 한심할 정도로 자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 눈금 하나 하나를 넘어 가기가 어찌 그리 어려웠던가?


난 그 이유를 알고자 고심했고, 곧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간혹 날 안타깝게 했던 그 "거대한 산"이었다. 그 진리의 높은 산은 오랫동안 성경 공부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낮아지지 않은 채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내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나에게 있어 하나님의 존재가 부정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우리의 구주"이시라는, 또한 "예수님의 보혈로서만이 우리의 죄가 사함을 얻는다."는 성경 복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와서 내 머리 속에 묶여져 있는 불신의 매듭이 풀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인간 모두가 "죄인"이라는 미명 아래 - 아담과 이브가 태초에 하나님께 지었다는 그 "죄"로 인해 - 우리 인간들이 살아있는 동안 겪는 고통과, 또 우리들이 죽은 후에 닥칠 결과들에 대해 난 오히려 반발하고 싶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씌어진 이 죄인의 굴레가 억울했고, 구주라고 불리우는 "인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밀씀은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했다. 그 죄의 엄청난 결과마저 짊어져야 하는 우리 또한 억울한 희생양이라고 맞서고 싶었다. 그러니 침례의 의미가 내게 진심으로 받아들여질 리가 만무였다. 오히려 난 내 생각의 이치대로 정직하고 싶노라고 만용을 부렸다.


이 세상을 살면서 배우고 들어온, 소위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이 "신이신 예수님이 인성을 취해 이 땅에 오신 인류의 구주"이심의 진리를 짓밟고 선 채 내 오만한 머리 꼭대기에서 우뚝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이다. 이 하찮은 지식이라는 것은 내 신앙의 걸림돌이었으며 커다란 방해꾼이었으나, 이것을 깨뜨려 부수기엔 난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아주 충실하게 길들여져 온 사단의 노예였다. 그 사실을 그 때는 알지 못했었다.


나의 불확실한 믿음으로 침례의 첫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또다시 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 그 동안에도 목사님은 꾸준히 나의 깨우침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힘써주셨다. 나 또한 노력했으나 내 영혼은 여전히 광명과 흑암을 계속 넘나들며 내가 안주해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교회에서 침례식이 있게 되었고, 난 또다시 침례의 권유를 받았다. 

그동안 목사님이 닫혀진 나의 영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 오신 것을 잘 아는 나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에라 받으라니까 받고 보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하여간 침례 날짜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나의 이 불안한 심리를 알아낸 사단이 이 좋은 기회를 결코 놓칠 리 없었다.

사단의 교묘한 술책은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늘 기독교를 부정하며 거부해온 남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이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목사님 사이에 과감히 사단은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불화를 일으키고 말았다. 그 두 사람의 불화의 불똥은 나에게 떨어졌다. 남편은 내 침례를 강력히 막았다.


"정말 귀찮아 죽겠네! 아니 그 목사는 왜 나까지 교인을 만들지 못해서 안달인가!"

남편은 화를 내기 시작했고 드디어 내게 명령하듯 말했다.

"그 목사가 이 교회 있는 한 당신은 절대 침례 못 받아, 알겠지?"


남편의 성격을 잘 아는 난 묵묵부답으로 대할 수 밖에 없었다.

곧 목사님의 겸허한 자세에 남편의 화는 한풀 접었으나 나의 침례식은 "일년 후에"라는 조간이 붙여졌다.

그러나 더욱 가증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 그 불화를 관망하며 나는 또 다시 내 침례식의 미뤄짐에 얼마나 안도하고 있었던가. 사단과 나는 알고 있었다. 난 침례를 받을 자격이 없었음을. 그리고 사단은 기뻐하였다. 나의 불신을. 그래서 즐거이 이 일을 꾀하였던 것이다.


사단의 함정은 사실 내 불신이 파놓은 것이었는데 비열한 그는 내 남편마저 자신의 반역 도구로 삼아 하나님께 끊임없이 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지금에 와서야 나에게 큰 교훈의 깨달음을 주며 내 믿음 생활의 제일위의 신조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단은 우리의 불확실한 믿음을 시시각각 염탐하며 하나님을 거부하고 싶은 이유를 우리에게 끝없이 가르쳐 준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이유가 정당하다고 믿게 만든다. 만약 우리가 늘 깨어있어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재하지 않으면 우리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단의 술책 안에서 실족당하고 만다.


남편이 정해준 그 일년은 쏜 화살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아, 하루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미루어진 침례식은 잔뜩 밀린 빨랫감을 보듯이 그렇게 늘 불안하게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는 길인지 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어느새 나의 믿음은 가르팍 내리막 길을 빠른 속도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고, 나는 간신히 힘들여 쌓은 내 작은 신앙의 언덕 위에서부터 순식간에 저 밑바닥에 굴러 내려 엎여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 하시는 아버지의 음성과 "이제는 늦었으니 그냥 있으라."하는 사단의 달콤한 유혹 사이에서 난 쉴새 없이 갈등했고 그 사이에 내 신앙의 키는 더욱더 짧아져서 신앙의 잣대 끝머리 하늘나라는 이젠 내가 가기 어려운 저 머나먼 곳이 되어 버렸다.


온갖 핑계를 대가며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날이 하는 날보다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하던 어느날, 나는 내 피곤하고 무의미한 신앙생활에 종지부를 찌어야겠다고 작정했다. 교회로 인한 갈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철저히 얼음처럼 차갑게 그분으로부터 돌아서고 싶었다.


하나님의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절제된 음식으로부터의 자유...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생활의 모든 자유를 만끽하며 지냈다. 그러나 이 자유가 사실은 영원한 몰락의 몰락의 사슬에 거꾸로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아니, 알기조차 원치 않았었다. 하여간 세상 생활의 즐거움은 사단의 풍악 소리에 맞춰 그들의 잔치 안에서 활기 있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죄의 시간들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 하나님은 당신이 손수 가꾸어 놓으신 내 작은 믿음의  꼿밭을 결코 사단으로 하여금 망가뜨려 놓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내 마음의 꽃밭에 심으신 작은 믿음의 겨자씨가 온갖 비바람과 추위에도 얼어죽지 않고 있었음은 그분의 보호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내 어찌 몰랐을까.


"주님, 당신으 어찌하여 이 하찮은 영혼 하나조차 포기하지 못하셨나이까?"

나는 지금 여쭙고 싶다. 감히 여쭙고 싶다.


작년, 마지막 천년을 보내며, Y2K 문제로 한참 들썩거리는 세상의 한 복판에서 같이 어수선 떨던 어느 가을날, 콜롬비아 교회에서 전도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가 보다. 나하고는 이젠 상관없는 일. 무관심하려 했다. 

그런데 그 전도회가 시작되는 날짜가 왜 내게 왜 기억되었으며, 왜 나 마음은 그 일로 신경을 쓰게 되었는지.


첫날은 복잡한 생각들로 들쑤시며 집에서 지냈다. 

그러나 전도회 둘째 날 저녁, 나는 더 이상 집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마음이 되었다. 

남편에게는 잠까 나갔다 오겠노라고 말하고는 집을 나셨다. 내 발걸음은 곧장 교회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전도회는 이미 수없이 들어왔던 하나님의 기별을 복습하는 듯 보였으나,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복음 증거의 말씀들은 또다시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고 마치 처음 들어보는 것처럼 새로운 울림으로 가슴 전체에 퍼져 흘렀다. 아! 얼마만에 가져보는 은혜로운 시간들이었는지!


교우들은 진심으로 반가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난 조금 쑥스럽기도 해서 주저 주저했으나 결국 하나님 앞에서의 내 모양은 자석의 힘에 나약하게 끌려온 한 개의 작은 못이었을 뿐이었다.


숯불처럼 피어나는 내 영혼의 색깔을 나는 다시 보았다. 붉고 찬란히 다시 피어오르는 믿음의 색깔이 마지막 전도회의 불꽃 같은 열기와 함께 아름답게 어루러져가고 있음을 보았다. 일년 전보다도 더욱 멀리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었으나, 그 나흘간의 주옥 같은 말씀들은 단번에 나를, 내가 굴러내렸던 내 작은 믿음의 언덕 위로 번쩍 들어 올려놓으셨다.


그토록 인정되지 않았던 죄의 의문은 강사 목사님이 알기 쉽게 설명하신 도미노의 원칙처럼, 인류의 첫 조상이 지은 죄로 인하여 도미노가 쓰러져 가듯이, 후손들이 차례로 물려 받게 된 죄의 성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드디어 내 머리 속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토록 간단명료한 진리가 왜 그동안 나를 그토록 혼동케 했는지. 

아하! 그렇다면, 난 죄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의 음성을 내게 듣게 하시기 위해 나는 전도회로 인도하셨던 것이었다. 난 그동안 내가 그토록 갈망해오돈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해서라도 주시겠노라는 성령의 약속의 음성을 그때 들었다. 또한 눈앞에 다가온 예수님 재림의 예언말씀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나, 그 당시의 Y2K 바람은 나를 충분히 떨게 했다. 그래서 하루빨리 하늘나라 생명책에 내 이름 석 자를 기록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고 어리석은 조바심이었지만 그것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당신께 가까이 인도하셨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유야 어떠했던 간에 나는 하나님의 생명의 동아줄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


침례받기로 결심한 후, 기쁜 마음으로 침례식 준비를 하시는 교우님들의 모습을 보며 난 새로운 걱정으로 며칠을 보냈다. 남편에게 나의 침례 소식을 알려야 함이 심히 망설여졌다. 남편이 알면 일어날 풍파는 뻔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에게 말할 용기와 아울러 그 기회를 주시길 끊임없이 기도했으나 끝내 하지 못하고 그날을 맞이했으니 이 또한 주님의 깊은 뜻이 아니었을까?


드디어 침례식 날이 되었다. 

"주여 지난날 저의 모든 죄를 이 순간 조목조목 사해 주시고 이제는 저를 당신의 진정한 딸로 태어나게 해주소서."

내 몸과 마음은 사시나무 떨리듯 사정없이 떨렸다. 잠시 후에 내 간절한 기도와 함께 내 몸은 물속으로 잠겨졌다. 다시 물위로 나왔을 때, 난 완전한 하나님의 딸, 거룩한 주의 딸이 되어 있었다. 드디어 사단의 썩은 동아줄로부터 하나님의 생명의 동아줄로 무사히 구출이 되었다. 내 얼굴, 젖은 얼굴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침례식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이 물었다. 

"당신 머리가 왜 그래?"

아침에는 곱고 단정했던 내 머리가 부스스한 것이 이상했나 보다. 

평소에는 내 모습에 별 관심도 안 두는 남편이었기에 갑작스러운 그 질문은 날 당황케 했다. 

난 사뭇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대답했다. 

"으응...저...나 오늘 침례받았어..."

불벼락이 떨어질세라 내 이는 달달 떨려왔다.


"뭐?"

그의 작은 눈이 무지무지하게 커지며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보는데, 마침 아이들이 문을 열고 밖에서 들어왔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질문의 화살을 돌렸다.

"너희들은 알고 있었니? 네 엄마 침례받는다는 걸?"

아이들은 내 눈치보기에 바빴다. 


남편은 다시 내게 질문을 돌렸다.

"그런데 당신! 왜 내게는 말 안 했어?"


"...으응...사실은 오늘 아침까지도 결정을 못했었는데...다른 사람들 받는 틈에 끼어서... 그냥 받았어..."


난 당황한 나머지 이렇게 둘러대었다. 남편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이 깜찍하고 맹랑한 마누라를 어찌해야 좋을까. 

가슴을 치며 화를 삼키고 있었을지 몰랐다.


내가 침례를 받은 이후 집안 분위기는 남편의 무거운 침묵 속에 마치 폭풍의 전야같은 어둡고 깊은 정적으로 쌓여갔다. 남편은 그날부터 몸의 컨디션이 안 좋다면서 며칠간 사무실에 출근도 안하고 잠만 잤다. 


계속 잠만 자는 그의 모습에서 난 그의 하염없는 외로움과 허탈감을 보았다. 

남편의 모습은 내 마음을 정말 아프게 했다. 


난 진심으로 남편에게 용서를 빌었다.

"여보 미안해! 당신에게 말도 않고 침례받아서..."


그러나 그는 여전히 눈감고 돌아누운 채 신음하듯 내뱉었다.

"어음...이젠 다 끝났잖아..."


그러나 그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의 목소리는 높아지기 시작했다.

"괘씸한 목사 같으니라고!"


나는 다시 긴장했으나 곧 담대해졌다. 나는 이제 주님의 딸, 정녕 두려움이 없어야 했다.


남편의 성난 음성 저편 뒤에, 사단이 자신의 실패를 자인하며, 이젠 나를 포기하는 처절한 신음소리가 나는 듣는 듯했다. 사단의 광란하는 무너짐을 보고 있던 난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으며 이젠 진정으로 사단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승리의 기쁨을 외치고 싶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전도회 때 선물로 받은 엘렌 지 화잇의 "시대의 소망"은 내 새로운 믿음의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며, 진리의 빛을 내뿜으며, 뜨겁게 뜨겁게 내게 다가왔다. 그 책을 읽어 나가며 나는 삼위일체의 의문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토록 갈구했던 그 답들은 놀랍게도 그 책 구절구절마다 가득넘쳐 흐르고 있었다. 

머리 속에서만 인정이 되어 날 안타깝게 만들어왔던 검은 먹구름이 삽시간에 걷히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넘치는 뜨거운 사랑에 압도되어 난 침도 삼킬 수 없었으며, 마침내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분을 만나기 시작했다. 어느 때는 사마리아 여인과 함께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나를 발견했으며, 산상수훈을 하실 때는 난 그분 제자들 무리의 맨 끝에 조그맣게 앉아 말씀들을 이해하려고, 또한 가슴에 새기려고 애썼다.주님은 이렇듯 가시는 곳마다 나를 동행시켜 주시며 그분을 넘치도록 증거하셨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인류의 지도자들이 역사와 함께 그들의 이름을 남겨왔다.  허나 그 누가 이분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이 엄청난 권능과 이적들을 흉내조차 낼 수 있을 것인가" 그분께 나타난 번쩍이는 신성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흠뻑 빠져버린 나는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시대의 소망을 믿음의 벗으로 삼고 매일을 살아가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난 아이들을 오케스트라 연습장에 내려 놓고 구석진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하나님 말씀을 접할 때는 어디든지 아무도 없는 곳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밖의 날씨는 몹시 쌀쌀했으나 차 안은 가득한 햇빛으로 아늑하고 따뜻했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책을 펼치고 거의 막바지에 달해 가는 이 책의 절정에 들어갔다.


갈바리에서 고난을 받으시는 주님의 모습에 내 작은 가슴은 찢어졌고 그분을 해하는 무리들에게 안타깝게 분노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인류 구원의, 우리 인류의 엄청난 죄사함을 온전히 이루시는, 주님의 완전한 승리의 순간을 목격하게 되었다. 

십자가에서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신 후 부르짖으신, "다 이루었다..."라는 그분의 말씀으로.


아! 그토록 끈질겼던 나의 이기심은 그 순간 온통 무너지기 시작했고, 내 무지한 영혼을 묶어 놓았던 불신의 실오라기가 마침내 풀리며, 성령의 불길이 그 실오라기들을 활활 태우기 시작했다. 


누가 이분을 이렇게 만들었던가! 왜 어찌하여 우리들은 이 순간까지도 그분의 진리를 거부해왔어야만 했던가! 우리의 무지와 아집이 빚어낸 주님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그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리고 평생 동안의 나의 온갖 죄를 바라보며, 난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오열하기 시작했다. 

늦은비 성령은 통회의 눈물로 폭우가 되어 나를 온통 적시고 있었다.


그날 나는 성령으로 재침례를 받았다. 아니, 그날 이후 난 매일 성령으로 침례받고 있다. 어렵게 얻은 이 믿음을 지키며 실족하지 않기 위해 혼신을 다 해 오직 말씀에 귀 기울이고 기도에 나를 맡기고 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기 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귀에 들리지 않았던, 수없이 많은 나를 위한 기도들이 있었고, 그 기도들의 응답을 내가 받았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난 이 영광을 하나님께 온전히 돌리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각자가 수없이 크고 작은 믿음의 빛들을 받아 안고 있다. 그 믿음의 빛을 받은 대열 맨 끝에 이제 자그마하게 서 있는 나이고 싶다. 그리고 아주 작을지언정, 감사하게 받은 이 소중한 나의 빛을, 나의 사랑을 아직도 어둠에 살고 있는 여러 영혼들을 위해, 또 아직 믿음이 약한 나의 가족들을 위해 나누며 살게 해주십사 늘 기도한다. 그러는 동안 나의 작은 믿음 또한 그 빛의 대열로부터 반사받아 함께 눈더잉같이 커져 가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하나님이 나에게 호흡을 주심으로 시작케 하시는 매일의 첫 새벽!

이 깨끗하고 작은 시간을 주님께 온전히 기도로 바치며, 그의 말씀을 매일의 양식으로 받으며 시작하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매일의 새벽기도 시간은 나의 하루 일고 중 가장 소중한 순간들이다. 나와 내 아버지가 단둘이 갖는 이 시간, 아버지는 내 소망에 귀 기울여 주시고, 나의 눈물도 닦아 주시며 내 상처 또한 어루만져 주신다. 

아! 그분의 자명종은 오늘 아침도 나를 단잠에서 깨워 주시고 당신을 뵈러 가는 설레임을 안겨 주신다.


아직은 착한 천사와 악한 천사 사이에서 간혹 날 당혹케 하는 남편이지만, 조금씩 부드러워져 가는 그이를 대하면서, 나는 우리들 의 기도가, 또 우리에게 주시는 빛들이 그이로부터 조그맣게 반사되어 비춰옴을 본다. 


언젠가 하나님께 난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다. 

왜 애초에 내게 안식일교인을 신랑으로 주시지 않으셨느냐고. 

허나 난 그분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것은 훗날 내 남편과 함께 하나님 존전에 나아가야할, 내게 주신 숙제임을.

그리고 난 그 숙제에 백점 플러스를 받고 싶다.


오늘 새벽, 남편은 나보다도 먼저 일어나 내 차의 시동을 걸어 차 안을 따뜻이 녹여 주고, 차 유리에 두껍게 언 성에도 말끔히 닦아 놓고, 내 새벽 길을 준비해 준다. 떠나는 나에게 미소까지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가끔씩 나를 감동하게 해주는 내 사랑하는 그이에게 손을 마주 흔들어주며 살며시 주님께 여쭈어 본다.


"주님, 제게 보여 주실 그날은 언제쯤인가요?"

아무도 그분의 섭리를 헤아릴 수 없으나 우리는 다만 믿고 또 믿어야 할 뿐이거늘!

어두운 새벽 길을 가르며 힘차게 달리는 내 믿음의 발걸음에, 나의 눈가에, 그리고 나의 두 뺨에 촉촉한 성령의 눈물이 젖어들고 있었다.



***미주 시조사 설립 20주년 기념 현상 공모 신앙 간증 모음집 "내영혼에 비친 햇빛"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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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5월 30일 초판 1쇄 발행

2004년 1월 6일 초판 3쇄 발행

엮은이 송순태, 발행인 오성훈, 인쇄인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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