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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는 그분의 이기심 없는 생애를 목격했지만, 유다는 탐욕적인 성향을 계속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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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우리가 죄에 대한 유혹을 받거든 예수님께서는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탄원하시고 계심을 기억하자. 


우리가 죄를 버리고 믿음으로 그에게 나아가는 때에는 


우리 이름을 그의 입술에 취하시어 그의 아버지께 제시하시면서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 명령은 천사들에게 그들을 보호하라고 발하여졌다. 


혹독한 시련의 날에 

그는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가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사 26:20)고 그는 말씀하실 것이다. 


그들이 숨어야 할 밀실은 어떠한 것인가. 


그 밀실이란 그리스도와 거룩한 천사들의 보호이다. 


이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 장소에 결코 있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같지 않은 무리 가운데 있으며 이 지상 각처에 널려 퍼져 단체로서가 아니요 개인적으로 시련을 받게 될 것이다. 


각자는 홀로 시험에 서야만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처럼 그의 허락을 주장해야 할 보다 더 큰 필요성이 있었던 때는 일찍이 없었다. 


믿음의 손이 암흑을 꿰뚫고 무한한 능력의 팔을 붙잡도록 하라. 


우리가 죄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필요성을 말하는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으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심”(히 7:25)을 기억하라. 


예수님의 피는 죄의 모든 점과 더러움으로부터 능히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음을 믿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능력을 제한시켜서는 안 된다.… 


그대는 시험을 받을 때에 실망하지 말라.(RH, 1908. 11. 19)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시 144:12)


젊은 날의 성질과 버릇은 장년기에 가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법이다. 

어린 나무는 어떤 모양으로든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구부리기가 쉬운데, 만일 나무가 그런 상태로 자라난다면, 

그 나무는 기형적인 나무가 될 것이고, 그대의 손이 저지른 학대와 그로 인한 불구를 내내 입증할 것이다. 

나무가 성장한 몇 년 후에 그것을 바로잡으려 해도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그 나무는 휘어진 나무로 항상 존재할 것이다.


젊은이의 마음 또한 이와 같다. 

그들은 또 올바른 방침 아래서 훈육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방침으로 훈육될 수도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 그들은 젊은 시절에 가르침을 받았던 그 길을 추구할 것이다.

젊은 시절에 형성된 습관은 성장함에 따라 굳어지고 굳어져서 평생을 가는 법인데, 오히려 그 버릇은 더 굳어져갈 뿐이다. 

우리는 거의 모든 사물들이 피상적으로 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요람에서 시작되는 어린이의 훈육이 피상적이기 때문에 품성은 요지부동의 상태가 되고 만다. 

그들의 품성은 미끄러운 모래 위에 세워진 것이나 다름없다. 


유혹을 예상하고 역경과 위기가 닥칠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도록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자신을 관리하고 역경을 의연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함은 물론이다

만일, 부모들이 자녀를 교육시키는 일에 있어서 자신들이 진 두려운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경우, 

그들은 기도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이고, 불필요한 자기 자랑에는 그 반대가 될 것이다. 


자녀를 훈련시켜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품성으로 계발하기 위하여, 

부모들은 지혜와 거룩한 도우심을 구하기 위하여, 숙고하고 연구하고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자녀가 세상의 찬사와 함께 영예를 누릴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아름다운 품성을 갖추도록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을까를 염려하자. (3증언, 143-145)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잠 11:3


선지자의 붓을 통하여 매우 제한된 방법으로 묘사된 다니엘의 실례는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그것은, 사업가는 반드시 수리에 밝은 예리한 사람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는 매 걸음마다 하나님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국의 총리이면서도 하늘의 영감의 빛을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 

불경하지 아니하면서도 저들의 모든 사업상 거래에 진리의 위대하고 고결한 원칙들을 짜 넣을 수 있는 사업가들이 특별히 필요된다. 

사업을 위해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철저한 연구와 훈련을 통해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연마하고 완전하게 할 필요가 있다.

사업에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사업가는 한 사람도 풋나기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만일, 어떤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든지 현명하고 유능한 사업가가 되기 위하여 자신의 기회를 증진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으면, 

그러한 자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 저들의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현시대를 위한 교훈들은 모든 사람들이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빈약하게 이해하고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 우리가 이 세상 역사의 끝에 가까와 갈수록 중요성을 더해 갈 것이라는 사실을 전망하는 가운데, 

더욱 더 깨어 기다리고 주시하며 기도하고 일하는 철저함이 증대되어야 한다. 


인간 대리자는 완전함에 도달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되는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사업을 하는 자들은 그릇된 원칙들과 방법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오류에 대하여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 

그들에 대한 기록은 바벨론의 궁정에 있던 다니엘의 그것과 같아야 할 것이다. 

그의 모든 사업상 거래에서, 면밀한 조사를 받았을 때에라도, 그에게는 한 가지의 잘못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사업가가 닮아야 할 모본이었다. 


심령은 바뀌어져야 하고 깨끗해져야 한다. 

동기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여야 한다. -특별 증언, Series A, No.9, pp.65, 6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요 13:21)


제자들은 “주여 내니이까”라고 물으면서 서로 상대방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유다는 무관심한 척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이제 그의 침묵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이끌었다. 

제자들의 살피는 눈을 피하기 위하여 그는 용기를 내어 다른 제자들이 했던 대로 “주여 내니이까”라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엄숙하게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대답하셨다. …

지금이라도 유다는 그의 죄책을 인정할 수 있었고 지금이라도 그를 사로잡은 마력을 깨뜨릴 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언제든지 도울 자세로 그의 곁에서 도망칠 아무런 힘이 없었다. 


자신을 동정 많으신 구주의 자비에 내어 맡기는 대신에 그는 반역하는 일에 더욱 분발하였다. …

유다의 역사는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도 있었을 생애의 서글픈 종말을 제시해 준다.… 

유다 자신은 제자들의 측근 그룹의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썼었다. 

매우 열렬하게,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진심어린 태도로 그는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라고 단언했다. …

제자들은 유다가 그들 그룹의 일원이 되었으면 하고 열망했었다. 

그는 풍채가 뛰어난 인물이었고 예리한 식별력과 행정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들은 그분의 사업을 크게 도와줄 사람으로서 

예수께 유다를 추천하였다.

유다의 얼굴은 사람을 되쫓아 버리는 상이 아니었다. 

그의 용모는 예리하고 지성적이었지만, 참으로 회심한 사람들에게서 엿보이는 자애로움과 동정심이 결여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가운데 유다는 사욕이 없는 정신을 계발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날마다 그리스도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이기심 없는 생애를 목격했지만, 유다는 탐욕적인 성향을 계속 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마음을 읽으셨으며 그분의 가르침들 가운데 탐심의 뿌리 자체를 강타하는 자선심의 원칙을 강조하셨다. 

그분은 유다 앞에 욕심의 흉악한 성격을 제시하셨으며, 여러 번 그 제자는 자신의 품성이 묘사되고 그의 죄가 지적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불의를 고백하거나 버리지 않았다.


그는 자만했으며 시험을 물리치는 대신에 속이는 일을 계속 해왔다. …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유다를 아셨지만 그의 발을 씻기셨다. 

그리고 그 배반자는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특권을 가졌다. … 


그에게 생명의 떡과 구원의 물이 제공되었다. 

그에게 구주의 교훈이 주어졌다. 

그러나 유다는 그것을 받아들여 유익을 받기를 거절하였다. (원고 106, 1903)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시 103:13).


우리의 하나님은 부드럽고 자비가 많으신 아버지로서 여김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이 우리 마음을 슬프게 하거나 낙심을 주는 일로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주를 경배하고 당신의 사업을 참여하는 것은 기쁨이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의 경륜을 명상할 때에 그들의 마음은 사랑과 봉사 가운데서 녹아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위대한 구원을 제공받은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딱딱하고 엄한 주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그는 저들의 가장 좋은 친구로서 그들이 당신을 경배할 때에 

그들과 같이 계셔 축복하고 위로하며 기쁨과 사랑으로써 그들의 마음에 채워주시기를 원하신다. 


주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당신을 봉사하는데 있어서 위로를 받으며 또한 그의 사업 가운데서 어려움보다도 더욱 많은 즐거움을 찾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을 우리에게 선고를 내리시고자 준비하고 있는 재판장으로서만 생각하고 사랑의 아버지가 되심을 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 욕 돌리는 것이다. 


모든 영적 생애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개념으로 인하여 형성되는바 

만일 우리가 그의 품성에 대하여 잘못된 견해를 품는다면 우리의 심령은 해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하기를 바라시며 그들에게 애원하고 계시는 것을 보아야만 한다. 


온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부드러운 사랑으로써 과오를 저지르는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을 부르시며 달래는 분으로서 나타났다.…


오! 우리는 겸손히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지 않겠는가.(RH Jan. 14, 1890)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느 2:6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 반면 

자기는 예루살렘 성을 회복시키려는 그의 목적을 수행하는 일에 아무 책임감도 느끼지 않고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탄할만한 분별력과 통찰력으로 그는 그 과업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데 필요한 모든 준비를 진행시켰다. …

이 거룩한 사람의 모본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이 믿음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교훈이 되어야만 한다.


분별과 통찰력, 정성이 종교와 거의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난관에 부딪치며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를 얼마나 자주 방해하는지! 

이것은 커다란 과오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보다 능률적인 일꾼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능력을 배양하고 활용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주의 깊은 생각과 잘 짜여진 계획들이 느헤미야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거룩한 사업의 성공에 필수적이다. …


기도의 사람은 또한 행동의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

주께서는 아직도 그 백성을 위하여 여왕이나 통치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자들은 그분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사람들로 그들에게 주게 하려는 도움을 활용해야만 한다. …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동조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며 그분의 말씀을 전혀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들의 선물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

오, 그리스도인들이 의의 원칙을 품고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전진시키기 위해 하늘이 보낸 모든 기회를 활용하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요 의무라고 것을 더욱 더 완전히 깨달을 수 있다면! (SW 1904. 3. 15)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 4:12)


보호 관찰 기간인 아동기와 청년기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결부되어 있는지!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이 사업에 필요한 적합성을 얻음으로 이 시기를 선용하기를 갈망하신다.


교육이 필요하다면 굳게 결심하고 노력하라. 


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그대 스스로 길을 개척하라. 


그대 앞에 열리는 어떤 작은 길도 굳게 붙잡아라. 


그대가 손에 잡는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철저하고 신실하게 행하라.

우리 청년들 가운데 더러는 매우 우유부단하기 때문에 스스로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그들 생애의 절반은 어떤 일을 할지,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할지 결정하기 전에 허비되고 마는 경우가 흔하다. 

그들은 받은 달란트를 많은 쓰레기 더미 밑에 파묻는다. 

이런 청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절약을 실천하라 

그대의 돈을 식욕을 만족시키거나 쾌락을 추구하는 데 쓰지 말라. 

세상에서 성과를 올려라.


하나님께서 되기를 원하시는 사람, 즉 유용하고 능률적인 사람이 되려는 목표를 세우라.’ 


얻는 지식을 활용할 때, 그대는 더욱 늘어난 지식을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열심히 읽고 유용한 노작 활동에도 열심을 내라. 


진지한 그리스도인 경건과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거기에 결합되면, 최고의 남녀가 될 것이다. 


학문 연구와 결합된 하나님께 대한 참된 헌신은 청년들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순하고 겸손한 사람, 자비와 선한 열매가 가득한 사람, 

편벽됨과 위선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하나님과 동포에 대한 사랑의 향기로 가득 찬 이런 영혼을 하나님은 영광을 얻을 그릇들로 사용하실 수 있다. (청년 지도자, 1897년 6월 24일자)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예수님은 그대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에게서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다. 


그분은 그대들 앞에 제시하신 본을 그대들이 쫓기를 원하신다. 

즉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쫓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그대들의 봉사와 심령의 최선의, 가장 높은 애정을 요구하신다. 


그대들이 그분의 섭리의 교훈들을 기쁜 마음으로 부지런히 배우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면서 걸어간다면, 

그분께서는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아이여 내가 그대를 위해 마련한 하늘 집으로 올라오라” (청년 지도자, 1897년 7월 15일자)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롬 4:16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죄인에게 희망이란 전혀 없다. 

죄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고 다만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죄인에게 희망이란 전혀 없다. 

죄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고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초자연적인 권능이 임하는 것이다.


죄악이 가증한 상태 그대로 분별 되어 종내는 영혼의 성전에서 그것을 몰아내는 것은 순전히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음으로써만 이루어진다. 

우리가 구속 사업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위하여 그분의 동역자가 되는 것도 이 은혜 때문이다. 


믿음이란 죄인을 용서해주시는 것이 적당하다고 하나님께서 보실 수 있는 상태이다. 

이는 그 믿음에 구원받기에 합당한 어떤 공로 즉 죄인에게 허락된 치료를 붙들 수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빛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3-5). 


의라고 하는 것은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다. 


율법은 의를 요구한다. 


따라서 죄인은 율법에 의무가 있다. 


그러나 죄인이 그 의무를 이행하기에는 전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의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이다. 


죄인은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의 공로를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순종을 그 죄인의 순종으로 간주하여 주신다. 


그때에 그리스도의 의가 인간이 실패한 그 장소에 올려져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회개하고 믿는 영혼을 받아주시고 용서하시며 의롭다하신다. 


그리고는 그 죄인을 마치 의인처럼 취급하시고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그도 사랑하신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어떻게 해서 의로 여기신바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용서함을 받은 영혼은 은혜에서 은혜로, 빛에서 더 큰 빛으로 나아간다. (기별 366, 367)

믿음은 거룩한 능력과 지혜의 창고를 연다. 


그리하여 이 흙의 기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의 기적을 성취하신다. 


이런 산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참된 믿음과 부드러움과 사랑을 지난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의 생애 13)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벧전 3: 10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신이 하나님의 한 작은 자녀로서 예의바르고 동정적인 기질을 함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한 사람의 교육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 자녀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자녀를 다룰 때 성급함이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얼어붙게 하는 차갑고 냉정한 위엄을 나타내어서는 안 된다.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므로 자녀들의 마음이 부드럽고 유순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늙은 사람에게든 젊은 사람에게든 그 누구에게도 거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말은 원수가 조장시키는 말이다.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친절하고 부드럽고 동정적이며 예의바른 사람이 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셨던 사랑을 배양하라. 


그대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사랑에 대하여 깊은 인상을 받도록 하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 찬 말은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길로 해서 하늘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대는 냉정하고 그리스도인답지 않는 위엄을 나타내려고 애쓰지 말라. 


그렇게 하는 것은 신앙도 아니요 그리스도교도 아니다.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그대의 얼굴에서 그분의 사랑의 광채를 발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얼굴로부터 빛나는 광선이다. 


그대의 딱딱한 위엄을 벗어 버리라.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그러한 것들을 마음에 품도록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대의 심령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 차게 하라. 


리하면 그리스도와 같은 동정의 빛이 그대의 얼굴로부터 빛날 것이다. …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에 대한 믿음도 없으면서 거룩한 일에 봉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들은 자신의 궁리대로 구원을 얻고자 노력을 배가한다. 


스스로 의롭게 되기 위하여 타락해 가는 악의 조류를 거슬러 서고자 헛되이 노력하는 그들은 얼마나 가련한가! 


저들은 전혀 무력하다. 


왜냐하면 저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서신 203. 1903).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단 12:1)


셋째 천사의 기별이 마치는 때에는 지상의 죄 많은 거민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대언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사업을 완성하였다. 

그들은 “늦은 비” 곧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르는 것”을 볼 것이니 그들 앞에 이르는 시련의 시기를 위하여 이미 준비를 마쳤다.


천사들은 하늘에서 분주히 왕래하고 있다. 

지상에서 돌아온 한 천사가 자기의 일을 마친 것을 보고한다. 


곧 세상에는 마지막 시련이 이르고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한 자들은 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하늘 성소에서 대언하기를 마치신다. 주께서는 손을 드시고 큰 음성으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성소를 떠나실 때 땅 위의 거민들에게는 암흑이 덮인다. 

의로운 자들은 이와 같은 두려운 시기에 중보자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악인들에 대한 제지가 제거되면 사단은 마지막까지 완고한 사람들을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끝났다. 


세상은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하였고 그분의 사랑을 경멸하였으며 그분의 율법을 유린하였다. 


악인들은 그들에 대한 유예의 한계를 지나쳐 버렸으며 완강히 거절된 성령께서는 마침내 떠나셨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호를 받지 못한 그들은 악한 자에 대하여 방비가 없다. 


그렇게 되면 사단은 세상의 거민들을 최후의 대 환난에 빠뜨릴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간의 정욕의 맹렬한 바람을 제지하기를 그칠 때 각종 쟁투가 일어날 것이다. 

온 세상은 옛적 예루살렘이 당한 멸망보다 더 두려운 멸망에 휘말려 들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613, 614)

깨끗한 손과 순결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시련의 날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바로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하여 네 천사가 네 바람을 붙들고 있는 때이다. (초기 58)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 : 2).


미시간 주에서 열린 야영회가 끝난 후에 한 자매가 내 손을 꽉 잡고, 나를 다시 만나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그녀는 22년 전 통나무집에서의 부르심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 당시 그녀는 우리에게 음식을 제공했고, 나는 ‘체험과 견해’라는 작은 책을 그녀에게 준 적이 있다.

그 후 그 자매 주위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 왔고, 이 책을 읽지 않은 이웃이 거의 없을 때까지 빌려 주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복사본을 얻길 간절히 원했다. 

그녀의 이웃은 그 책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저자를 만나길 원했다.

그녀는 처음 나를 만났을 때, 내가 예수님과 하늘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했고, 

그 말씀들은 그에게 힘 있게 전달되어 그때 받은 감동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때 이후로 주님은 그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교역자를 보내셨고, 안식일을 준수하는 동료가 꽤 늘어났다. 

많이 읽혀져서 지금은 닳아버린 작은 책은 조용히 그 일을 수행하면서, 흙이 진리의 씨를 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이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해졌다.

나는 22년 전 미시간을 오래 여행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는 버지니스(Vergennes)에서 열리는 모임에 가는 길이었다. 

목적지까지 24킬로미터가 남아 있었다. 


운전기사가 전에도 그 길을 여러 번 지나갔었고 잘 아는 길이었으나 그날따라 그만 길을 잃었다. 

우리는 그날, 길의 흔적이라고는 거의 없는 숲을 지나고, 통나무와 쓰러진 나무들을 넘어서 64킬로미터를 더 여행했다.

우리는 왜 이상한 곳에서 방황해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통나무집이 있는 작은 개간지가 눈앞에 들어왔을 때 정말 기뻐했고, 그곳에서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그 자매를 만났다. 

그 자매는 우리를 친절하게 안으로 안내하여 음식을 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기쁘게 먹었다.

휴식을 취하면서 그녀의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에게 작은 책을 주었다. 

그 자매는 기꺼이 받았고 지금까지 그것을 간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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