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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과 기도 : 부흥의 심장(교사들을위한강해식과정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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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과 기도 : 부흥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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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4분

 

연구 범위

행 1:4, 8, 14, 막 1:35, 눅 5:16, 마 18:19~20, 고후 10:3~5, 시 50:23.

 

기억절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

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도입)

파충류나 물고기나 곤충에게도 모성애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어떤 이성으로 새끼들이나 자식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모성애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미물들의 본능적인 모성애지만 그들을 통해서 가슴 벅찬 중요한 교훈을 받기도 한다. 오늘 기억절에 나타난 말씀은 주 예수님께서 인간의 부모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성도들이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부모 마음은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똑같다는 것이다. 비록 악한 사람일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즉 모든 인간들은 선천적으로 악하지만 한결같은 모성애를 갖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서는 기꺼이 희생하려고 한다. 즉 악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그 자녀에 대해서만은 그 악한 것보다 더 선을 베풀려고 한다는 것이다. 20명을 연쇄 살인한 유영철, 7명의 부녀자들을 살해한 강호순이 체포되고 난 후 그들의 신상이 공개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그들은 똑 같이 자식들을 걱정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특히 강호순은 그의 재산이 다 몰수당할 것이라는 말을 듣자 7명을 죽인 범죄행각을 글로 써서 인세를 받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아들 걱정은 사회적인 통념으로 볼 때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동일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기도할 때 강력하게 움직이신다.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의 말이 옳았다. “세상이 꿈꾸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이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부흥의 역사는 기도로 흠뻑 젖어 있다. 구약 성경은 부흥을 간구했던 부조와 선지자들의 중보 기도를 기록하였다. 모세, 다윗 그리고 다니엘은 능력을 달라고 전능하신 분께 탄원하였다. 사도행전은 하늘을 움직이고 성령의 부어 주심을 간구하기 위해 무릎 꿇은 신약 교회 신자들을 그린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하늘 아버지를 의지하는 기도 생활을 하셨다. 복음서들은 그분에게 있는 영적 능력의 근원을 어렴풋이 보여 준다. 구주께서는 오직 그분의 무릎으로 아버지께 엄청난 힘을 받으셨다.

“신앙 부흥은 오직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기대할 필요가 있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21). 이번 과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부흥의 역사에서 기도가 차지했던 역할을 탐색하고자 한다.

 

결론 : 우리는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분의 뜻을 더 온전히 파악하고, 그분의 임재를 더 강하게 느낍니다. 기도함으로 그분의 지혜와 능력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기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소통의 통로입니다. 기도는 부흥을 위하여 성령의 부어주심을 받아들이도록 우리 마음을 열어 줍니다.

 

첫째날(일) 사도행전에 기록된 기도와 부흥

7월 7일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교사강해 1)

부부가 한 평생을 함께 살아도 마음이 맞지 않아 싸우고, 더 이상 못살겠다고 황혼 이혼도 한다. 그런데 각기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낳아서 애지중지 키운 자식도 부모와 생각이 달라서 가슴을 치고 안타까워하는 일들이 있는데 교회에 교회의 모인 성도들이 하나 된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한 마음 될 수 있는 비결이 있다. 어렵지 않다. 간단하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

 

사도행전의 신자들은 위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충만하였다. 현저한 방식으로 그들 위에 성령이 부어졌다. 심령이 감동을 받고 삶이 변화되었다. 복음은 가장 어려운 지역까지 관통하였고, 수많은 이가 회심하였다. 사도행전 2장에서 3천 명이 교회에 더해졌다(행 2:41). 행 4:4에서는 믿는 자의 수가 남자만 5천 명이었다. 전에 예수님을 반대했던 다수의 종교 지도자도 믿음에 “복종”하였다(행 6:7). 경이적인 성장의 이야기는 사도행전 9장에서도 계속된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에서 교인의 “수가 더 많아”졌다(행 9:31). 사도행전 10~12장에서 복음은 지리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섰다. 로마의 백부장과 에티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침례를 받았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처음에 다락방에 모인 신자의 수는 약 백이십 명이었다(행 1:13, 15). 그런데 1세기 끝에 로마 제국 내에는 적어도 백만 명의 기독교 신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이는 놀라운 성장이다. 그렇다면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다음 성경절을 살펴보라. 신약 교회가 성장하였던 중요한 원인은 무엇인가?(행 1:4, 8, 14, 2:42, 4:31, 33, 6:3~4)

R. A. 토레이(Torrey) 목사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영감적인 부흥 설교자였다. 그는 1903~1905년에 영국에서 그리고 1906~1907년에는 미국에서 부흥 집회를 인도하였다. 그는 분주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못하고 너무 바빠서 능력을 얻지 못한다. 활동은 많지만 성취는 적고, 집회는 많지만 회심은 없으며, 장비는 갖춰졌지만 결과는 거의 없다.”

 

부가적용)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이렇게 말했다. 기도 없이 10년 하는 것보다 기도하고 10분을 하는 게 낫다.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차라리 10분간 기도하는 편이 낫다.’ 고든(A.J.Gordon)은 말하길, ‘기도한 다음에는 기도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하기까지는 결코 기도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없다.’

 

교훈 : 사도행전에서 교회가 지속적으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들의 기도에 있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도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못합니까?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느냐는 질문에 보통 2시간 정도 기도하고 아주 바쁜 날은 3시간 정도 기도한다는 대답으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해야 할 일이 많고 바쁠수록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간에 쫓기면서 일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성령의 지배를 받고 그분의 능력으로 일해야 합니다.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 적용 |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데에 더욱 집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감의 교훈

왜 성령의 선물을 열망하지 않는가? - “이것이 우리가 능력을 받을 수 있는 방편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성령의 선물을 열망하고 애태우지 않는가? 왜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말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에 관해 설교하지 않는가? 자식에게 좋은 선물을 주기를 원하는 부모보다 주님은 자신을 섬기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기를 더욱 원하신다”(사도행적, 50).

 

기도

아버지,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를 게을리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바쁘기 때문에 더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매 순간 도와주옵소서.

 

둘째날(월) 예수님의 기도 생애

7월 8일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교사강해 2)

기독교는 원래 적극적이며 동적인 종교이다. 기독교의 종교는 소극적이거나 정적 종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에 기도처를 찾았다. 왜 한적한 곳을 찾으셨을까? 이에 한적(閑寂)의 종교라 하면, 혹 불교를 연상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활동력 있는 종교일지라도 그 속에는 한적의 신비가 잠재해 있다. 우주의 만상을 살펴보라. 장엄한 천체의 순환과 수많은 동식물의 번식이 살아 활동하는 놀라운 힘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잠재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롬 1:20). 신 33:14절에 “결실케 하는 보물 태양과 자라게 하는 보물 태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대낮의 태양은 결실케 하지만 모든 식물을 자라게 하는 것은 태음 즉 저녁을 관장하는 달이다. 대낮의 활동성과 한 밤의 한적한 쉼이 매일 같이 교차하고 있다. 이 땅의 삶이 한적한 곳과 번잡한 곳이 함께 공존해 있는 이 우주는 정적인 동시에 동적인 것이다. 그러나 삼라만상의 외면적인 활발한 활동의 모습은 그 힘이 정적인 깊음에서 나옴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물질 세대를 거슬러 종교의 한적에 처할 것이며, 우주의 신비를 느끼며 종교의 한적에 처함이 인생의 최고의 지혜이며 최상의 이상이라 할 수 있겠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놀라운 외적인 능력의 산실은 보이지 않는 한적한 기도에 있었음을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한적한 기도처를 찾아 기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음 말씀을 비교해 보라. 막 1:35, 눅 5:16, 9:18. 이 말씀들이 예수님의 기도 생활에 대하여 보여 주는 3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항상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4),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마 20:28) 함이라고 하셨다. 그가 사시고, 생각하시고, 기도하신 것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남을 위함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여러 시간 동안 아버지와 교통하심으로 하늘의 빛을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준비를 하셨다”(실물교훈, 139).

아래 성경 말씀을 살펴보라.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는지 찾으라. 예수님의 기도는 그분의 최우선적인 관심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예수님이 드리셨던 각각의 기도에서 가장 독특한 요소는 무엇인가?

요 17:20~24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눅 22:31~32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마 26:36~44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는 예수님의 삶에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기도는 아버지와 연결된 생명선이었다. 구주는 매일 기도를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를 새롭게 하셨다. 그분은 기도 생활을 통해 원수의 유혹에 맞설 용기와 힘을 얻으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리라는 깊은 헌신의 마음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오셨다. 기도는 그분께 영적 신선함과 능력을 제공하였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기도 생활을 이렇게 묘사한다.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눅 9:29).

 

부가적용)

우리는 종종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너무너무 바빠 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피곤이 겹치다 못해서 밥보다 잠을 더 좋게 느껴봤던 상태를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아침에 몸이 비틀면서 ‘5분만 더...’를 외치다가 결국은 학교(또는 직장, 예배)에 늦어본 적은 없는가? 이런 상태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하루의 일과가 과중한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이 얼마나 피곤한 상태이었겠는가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 전날에 하루 종일 사역을 하시고, 저녁 늦은 시간까지 수많은 각색 병든 자들을 고치셨다. 그런데 이처럼 피곤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면, 그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너무너무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 이른 시간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무슨 일을 하셨을까? 마가의 증언을 들어보자(막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예수님은 그 새벽에 한적한 곳을 찾아가서“기도”하셨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가셨다는 말이다.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도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새롭게 하셨다. 사실 여기서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공생애의 과정을 보면, 주님은 계속적으로 한적한 곳을 찾아서 하나님과 교제하셨다.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 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 5:15-16)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 6:12-13) 사람은 급하고, 중요한 것부터 일처리하게 되어있다(우선순위). 아무리 급해도 실탄을 넣어야 총을 쏠 수 있고, 아무리 급해도 음식을 먹어야 힘을 쓸 수 있듯이,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가르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러나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은 기도였다. 예수님의 사역에서 나타나는 그 큰 능력과 권세, 표적과 기사는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기도하신 것이 그 원천(源泉)이었다.

 

교훈 : 기도는 예수님의 지상 생애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그분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에게 매일 필요한 힘과 용기를 얻으셨다.

 

나의 삶 속으로

 

영감의 교훈

 

| 묵상 |

그대는 기도에서 능력을 얻고 있습니까?

기도함에도 능력을 얻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예수님의 기도와 같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세속적 성공을 위해 기도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죄의 유혹을 이기고 사람을 구원하며 돕기 위해 능력을 구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기도한다면 분명 능력을 얻을 것입니다.

 

| 적용 |

예수님의 기도 생활에서 그대는 어떤 점을 배우기 원합니까?

 

영감의 교훈

기도의 위대하신 모본 - “만일 인간의 구주께서 신적 능력을 소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필요를 느꼈다면, 연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들은 얼마나 더 열렬하고 끊임없는 기도의 필요를 절실히 느껴야 할 것인가! …이 마지막 시대에 진리를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어떤 다른 부류의 사람들보다 기도에 있어서 우리의 위대하신 모본을 따라야 한다”(교회증언 2권, 202~203).

 

기도

예수께서 매일 아버지를 의지하셨던 것처럼 저도 아버지를 매일 의지합니다. 아버지께 기도함으로 유혹을 이길 힘을 날마다 얻기 원합니다. 아버지께 연결되어서 하늘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돕게 해 주시옵소서.

 

셋째날(화) 함께 기도함

7월 9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

 

교사강해 3)

예수님께서는 합심 기도에 필요한 두 가지 요건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하나는 두 사람인데 이 두 사람은 합심 기도의 최저 선이며, 또 응답 받는 기도의 가장 효과적인 수효이다. 다른 한 가지는 합심이다. 합심이란 두 사람이 같은 기도의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기도를 말한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교회에서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합심하여 기도드리는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합심 기도란 두 사람 이상이 어떤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그 문제를 위하여 오직 마음을 함께 하여 간절히 간구하는 기도를 말한다. 한 사람의 골방 기도가 독창이라고 한다면 이런 합심 기도야말로 기도의 심포니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 같은 합심 기도에 대하여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하셨다. 옛날에 하나님의 종들이 나타낸 위대한 기도의 능력은 합심 기도가 많았다. 오순절의 역사적 사건은 다락방에서 나온 능력은 저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였다.

 

예수님은 자주 홀로 기도하셨다. 그러나 절친한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부탁하신 적도 여러 번 있다. 변형산에 오를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였다(마 17:1~2). 겟세마네에서도 그분은 자신과 함께 기도해 달라고 그들에게 호소하셨다(눅 22:39~46). 연합 기도에는 비상한 능력이 있다.

마 18:19~20을 자세히 분석하라. 연합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요약하라.

“그 약속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합하여 기도를 드리는 조건하에 주어졌다. 이런 기도는 개인 기도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응답으로 받는다. 그 힘은 신자들의 연합과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그들의 사랑에 비례하여 주어질 것이다”(The Central Advance, 1903년 2월 25일).

존 번연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기도한 후에 기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를 하기까지 기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열렬하고 진심 어린 중보의 기도를 드릴 때, 성령은 우리의 연합된 기도를 통해서 신비한 방식으로 강하게 역사하신다.

행 12:1~16을 읽어 보라. 베드로는 어떤 상황 가운데 있었는가? 교회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이 말씀은 연합 기도의 능력에 대해서 무엇을 알려 주는가?

베드로는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하여 베드로는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잠시 후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성경은 신자들이 함께 기도한 사실을 두 번이나 언급했다. 상황을 고려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같은 공동체로서 역경에 부딪혔을 때 마땅히 우리도 그들처럼 기도해야 한다.

 

부가적용)

합심 기도는 우선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일치가 중요하다. 서로 딴 마음을 가지고 구하는 기도가 아니다. 겉치레로 하는 형식적인 기도도 아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기도가 아니다. 두 사람 이상이 꼭 이루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서 이것을 응답 받기 위하여 간구하는 기도가 합심 기도인 것이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문도 들은 기도하는 목적이 오직 하나였다. 이 목적에 그들은 오직 마음이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고 하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다만 성령을 받으려는 단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여럿이 모여 합심 기도에 들어간 것이다. 다음에 합심 기도에는 전혀 기도에 힘쓰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자세는 목적하는 바가 이루어질 때까지, 응답을 받을 때까지 계속적으로 간구하는 일이다. 그들은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했다. 전혀란 표현은 간구하는 목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른 곳에 마음을 두거나 한눈을 팔거나 생각을 돌리거나 하는 일이 없이 오직 기도하는 일에만 모든 것을 기울이는 자세를 말한다. 이런 기도에 대하여 주님은 약속하시기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게 하시리라”고 하셨다. 그들은 드디어 오순절 날에 그들의 기도의 목적을 이루게 되었다.

 

교훈 : 연합된 기도는 개인 기도보다 훨씬 큰 힘이 있다.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가 함께 기도하면 성령은 신비한 능력으로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함께 기도할 수 있는 팀 또는 소그룹이 있습니까?

기도는 천국의 열쇠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모든 기도가 천국의 열쇠가 되지는 않습니다. 마 18:19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면”보다 더 중요한 조건은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면)”입니다. 기도로써 마음이 합쳐진 곳에 하나님은 함께 계십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은 못 이루실 일이 없습니다.

 

| 적용 |

그대는 교과반 또는 소그룹에서 어떤 기도로 합심하기를 원합니까?

 

영감의 교훈

연합된 기도 - “우리 주님은 두세 사람이 합심하여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면 받으리라는 약속과 함께, 그분의 가르침의 교훈을 따르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일정한 목적에 대한 우리의 소원을 아뢸 때에라도 다른 사람들과 연합해야할 것을 여기서 보여 주신다. 연합된 기도, 곧 목적의 연합에 큰 비중이 주어져 있다”(교회증언 3권, 429).

 

기도

우리가 함께 아버지께 나아가며,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고 성령을 구할 때에, 아버지여, 우리를 하나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일치된 마음에 임하시고, 하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넷째날(수) 우리의 자유

7월 10일

 

교사강해 4)

우리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엄마에게 묻는다. 그러나 고등학교나 대학에 가면 엄마에게도 잘 묻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한다. 왜 인간이 쓸쓸해지는가? 묻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묻지 않아서 쓸쓸하여지게 되고 하나님께 멀어지게 된다. 우리의 자녀들이 등록금 용지를 가지고 부모에게 가지고 온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지고 오기 전에는 등록금은 아이들의 부담이지만 아이들이 부모에게 등록금 용지를 맡겼을 때는 이제 부모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기 전에는 그것이 나의 문제이였지만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는 이것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문제가 되는 것이다. 기도한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꼭 기도한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도한 후에 그 문제는 하나님의 편에 속한 것이 되므로 우리가 겪는 경험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루신 경험이 될 것이기에 불평 없이 받을 필요가 있다. 그리하면 기도한 후에 우리의 영혼은 자유로울 수 있다.

 

그대는 기도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왜 우리는 그분께 성령을 구해야 하는가? 그분은 정말 우리에게 성령을 주기 바라시는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다. 그분은 도덕적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분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라도 우리를 위해 또 우리를 통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신다(시 78:41~42).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도록 자유를 드린다. 우리가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분의 모든 효용성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가 기도를 드리면 성령님은 우리가 그분을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준비시키신다. 우리가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우리를 맡기게 된다. 선악의 대쟁투 가운데서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더 강력하게 일하시도록 한다.

고후 10:3~5을 분석해 보라.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표현을 그대는 어떻게 정의하겠는가? 이 무기들은 무엇인가?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싸움이란 무엇인가? 그는 왜 이러한 비유를 사용했을까? 우리는 자신이 개입되어 있는 싸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에 벌어지는 대쟁투의 실체를 안다. 우리는 그것이 실재이며 우리도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 홀로 남겨진다면 우리는 사탄에 대하여 속수무책이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예수님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영적 전쟁에 필요한 무기, 즉 기도 생활이 있다. 기도라는 무기 없이는 아무도 마귀와 싸울 수 없다. 예수께서도 기도하실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기도할 필요가 있겠는가?

 

부가적용)

누구의 아들이냐? 얼마나 훌륭한 아들이냐? 머리가 좋으냐는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기도할 줄만 안다면 그 아이는 어디에 보내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세상에 어디든 계시고 하나님의 도움 받고 사는 자녀가 되면 어딜 가나, 언제나 무슨 일에든지 두려울 것 없고 염려할 것 없다. 기도할 때 아이들이 타락하지 않는다. 방황하지 않으며 유혹을 물리칠 수 있고 균형이 잡힌 삶이 된다. 요셉이 바로 그 중요한 모델이 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자유 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시되 기도하기를 기다리신다. 따라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적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하나님을 믿는 만큼 기도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실제적이고도 신비한 경험을 바탕으로 합니다. 만약 기도가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하나의 윤리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하는 만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믿는 만큼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하는 만큼 믿을 수 있습니다.

 

| 적용 |

하나님은 지금 그대가 무엇을 위해 기도드리기를 기다리실까요?

 

영감의 교훈 기 도

상상 이상의 가치 - “우리도 또한 영적으로 새 힘을 얻기 위하여 명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별도로 가져야 한다. 우리는 기도의 능력과 효력의 가치를 마땅히 분별해야 할 만큼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 기도와 믿음은 세상의 어떤 능력도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이룰 수 있다”(치료봉사, 509).

 

기도

우리에게 언제나 기도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에 빠져 있을 때라도 여전히 기도의 기회를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유를 사용하여 기도하오니 제 기도를 들어 주시고 제 힘이 되어 주시옵소서.

 

다섯째날(목) 효과적인 기도

7월 11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8).

 

교사강해 5)

기도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첫 번째 의미는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을 향해 받고 싶은 도움 혹은 희망이다. 그러므로 그 단어의 뜻이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기도는 누구나 느끼는 영감이며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 기도는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의 감정, 욕망, 슬픔의 진실한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그 분께 도움을 구한다. 또한 우리는 기도를 통해 창조주께 고백하게 되는데 이 고백은 가장 가까운 친구나 친척에게 할 수 있는 비밀 훨씬 이상의 것이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창조주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며, 밤낮으로 우리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그 분의 도움과 희망에서 기대를 갖게 된다. 기도는 우리의 종교와 정신적 자아에 꼭 필요한 생혈(生血)이며 기도는 또한 우리의 정신에 투여하는 매우 중요한 약(藥)이라 말할 수 있다.

 

효과적인 기도를 드리는 방법은 많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펴 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성경을 몇 절 읽고 그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과 대화한다.

시편은 기도의 주제에 있어 더욱 영감적이다. 기도 시간에 특정 시편을 가지고 한 절씩 묵상해 보라. 말씀을 크게 읽고 그것이 그대에게 무슨 의미인지 하나님께 여쭈어 보라.

어떤 이들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하나님과 단둘이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 어떤 이들은 찬양과 기도를 함께 드린다.

우리는 다음의 성경절에서 효과적인 기도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 시 34:1, 50:23, 67:3, 71:6.

다윗의 기도는 경배와 찬양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할 데 없는 사랑과 그분의 선하심을 묵상하면, 우리의 심령은 찬양으로 흘러넘치게 된다.

단 9:8~13을 읽어 보라. 이것은 어떤 종류의 기도인가?

효과적인 기도 생활에 바울은 어떤 요소를 더했는가?(엡 5:20)

엡 6:18과 빌 4:6에서 말하는 “간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이것이 기도에 중요한 요소인가?

기도의 공식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는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를 드린다. 그다음 우리의 잘못과 부족을 고백하고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우리의 요청을 아뢰며 간구로 기도를 마치되, 언제나 그분의 거룩한 능력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태도를 추구한다.

 

부가적용)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부모' 와 '자식' 의 관계 이다. 사도 바울이 '해산의 고통' 이라고 하였던 '십자가 보혈'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전까지의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는 '조물주' 와 '피조물' 의 관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것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천사보다도 못 한 존재가 되었다. 이 시기에서의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도 없었고, 하나님께 쉽게 제사를 드릴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사건으로 귀결 되어 진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2:14]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혈육에 속하심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더욱 더 돈독하여진 관계가 된 것이다. 이러한 예배의 모습의 변화는 기도의 변화를 유도했다. 이전의 제사장 외에는 다가갈 수 없는 지성소와 말씀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후 그분이 우리와 같이 혈육에 속하심으로 누구나 그분을 직접 접하게 될 수 있게 되었듯, 기도도 누구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의 유대교 율법에서는 기도는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곧 오늘날의 현대 교회가 <만인 제사장> 이라는 개념을 논하는 것이 이것이다.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 되었기에 모든 사람이 기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초기 기독교 시대에 있어서는 파격적인 것이었고, 말도 안 되는 것 이었다. 우리로 친다면 조선시대에 자녀가 부모님께 반말을 하는 폐륜을 저지르는 행위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대한민국에서는 대다수의 부모와 자녀가 반말로 대화를 하고 있다. 이렇게 부모와 자녀의 대화가 조선시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며 변화 하였듯, 기독교 내에서의 대화의 방식도 변화되어 온 것이다. <조물주-피조물> 의 관계에서 <주인-종> 의 모습을 거쳐 <부모-자녀> 의 관계가 된 것 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반말 하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이러한 변화의 모습은 당연히 기도의 변화를 요구한다. 기도의 변화가 없이는 관계의 변화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굉장히 엄격한 상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면, 현대에서는 친구에 가까운 가족으로 재편성되어 대화 방식이 변화 하였듯, 기도 역시 마찬가지가 되는 것 이다. 구약 시대에는 함부로 부를 수조차 없었던 하나님의 이름(여호와, 야훼)을 함부로 부르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아버지' 라는 의미를 넘어 우리의 '형제', '친구' 라고 까지 한다. 이러한 관계의 변화는 분명히 기도의 방법, 곧 대화의 방법의 변화와 연계되어 있다. 하나님을 우리의 '친구' 와 '형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곧 대화의 방식도 그와 마찬가지로 변화되었음을 의미 한다. 진실한 기도, 진짜 기도의 방식은 무엇일까? 바로 대화이다. 아무런 것도 필요 없다. 율법도 방법도 필요 없다. 그저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하나님과 대화를 하면 된다. 성경을 하나님의 러브레터 라고 표현한다.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적은 편지라는 것이다. 편지라는 것, 특히 러브레터는 상대방이 읽고 반응을 보여주길, 답장을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것이다. 나도 당신과 같은 마음이야, 나도 사랑해 라는 편지를 보내주길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 역시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편지를 쓰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고백에 대한 답장 중 가장 유효한 것이 바로 '기도' 이다. 우리의 기도는 곧 하나님께 보내는 답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답장을 보내기 어려워 할 것 같아 추신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제' 가 되어주시고 '친구' 가 되어주신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교훈 : 기도의 공식은 아니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며, 죄를 고백하며, 구원에 감사하고, 소원을 아뢰는 순서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하나님께 더 가깝게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께서 어떻게 기도하시는지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알려 주신 기도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9~13).

 

| 적용 |

기도할 때의 자세와 기도에 포함시켜야 할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영감의 교훈

기도에 찬양을 더하라 - “우리가 그렇게 많이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감사하는 일에 너무 인색하다. 하나님의 부드러운 자비가 더 많은 감사와 찬양을 불러일으킨다면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훨씬 더 큰 능력을 소유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점점 더 풍성해 지고 그분을 더욱 찬양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그대는 그대의 현 상태를 바꾸고 그대의 간구에 찬양을 더하라”(교회증언 5권, 317).

 

기도

아버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제 기도를 언제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 많은 소원이 있으나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우주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순종합니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7월 12일02

 

“그대들의 소원과 기쁨과 슬픔과 염려와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으라. …그대들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그는 당신의 자녀들의 요구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으신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약 5:11). …우리의 마음을 번뇌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에게 내어놓으라. 그가 감당하시기에 너무 과대(過大)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세계를 붙드시고 우주의 모든 사건을 관리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평강에 관계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그가 주목하지 않으시는 것은 없다. 우리의 경험 중에 어떠한 일이 너무나 흉악하다고 그것을 보시지 않는 경우는 없으며,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그가 풀기에 너무 어려운 것도 없다. 당신의 자녀 중에 지극히 작은 자가 당하는 어떤 재난이나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는 어떤 근심이나 기분을 좋게 하는 어떤 기쁨이나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어떠한 진정한 기도라도 우리의 천부께서 못 본 체하시거나 직접 관심을 두시지 않는 일은 결코 없다. 그는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 147:3). 하나님과 각 사람의 관계는 마치 그가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위하여서는 주시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특별하고 완전하다”(정로의 계단, 10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대답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성경이 줄곧 기도하라고 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를지라도 기도하는 사람은 그것이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흥과 개혁에 관하여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➋ 위의 인용문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합니까?

 

➌ 교회가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기도로써 극복해야 할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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