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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목장이 되는 안식일학교의 최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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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학교(교장단, 서기, 교사, 위원회)의 최고치(the hightest top of 

sabbath school)는 무엇인가? 안식일학교에서 에베레스트의 정상은 무엇

인가? 각양 영혼을 위한 상담역 활로라는 하늘 가는 정상이다.

무슨 일이든지 잘 해보자고 하는 곳에는 반드시 그 일의 최고치는 형성되고

나타나기 마련이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안식일학교는 단순히 순서진행의 한 

형식이 아니다. 출석, 매일공부, 사람인도, 선교헌금 등등 만이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의 최고치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성이 깊고 지혜롭고 재치있으며 창의적이며 지도력(권장

력)으로 무장된 교장단은 이쯤 되면 안식일학교(교장단, 서기, 교사, 위원회

<목회자 포함>)의 하는 일의 최고치를 저마다 이루어지게 할 것이 분명하다.

교장단은 시세를 따라 적당히 그리고 보편화의 될대로 되라는 지혜의 방정식 

보다 그리고 우수하기 보다 최고치의 가장 우수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안식

일학교 리더는 모두 이것을 알아야 하고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것

을 바라신다.

주님께서는 안식일학교에 영원한 것을 맡겼다. 이 세상에서 그럴듯 하게 우

수한 것을 주려고 노력하셨다. 그것이 십자가의 사랑이셨다. 

그런데 그것의 최고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 있는 바로 그것

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각양 양의 무리와 심리의 흐름을 잘 

알고 이해하며 항상 어루만지는 심리현상에 있고 성령께서 운행하신다는 것

이다. 거기에는 희생과 치유가 있다. 마치 드높은 아름다운 산봉우리에는 흰 

구름이 감도는 모습과도 같은 모양세이다.

말씀과 영감에 젖기를 바라는 각 양의 무리의 심리의 흐름은 그것을 오직 영

의 감각으로 알만 하다. 그래서 반생의 양들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

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한다.

안식일학교는 영구히 변할 수 없는 ‘영혼의 목장’이다. 교장단의 눈길에는 반

생들이 양의 무리로 보여진다. 헐몬산의 양의 목자는 100마리의 저마다의 

이름을 각각 짖고 그 이름을 각각 따로 부른다. 이름을 부르고 나면 바로 그 

양이 달려온다. 그래서 안식일학교는 ‘영혼의 목장’이다. 

참 목자는 양의 하나 하나의 개성과 성향과 믿음과 추구와 현금의 사려깊은 

걱정을 주제 요소가 무엇인지밝혀보는 마음의 시선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는 습성에 젖는다. 따라서 그 최고치는 양의 현금의 상황에 대한 추구에 

있다. 그래서 때론 시선이 치유한다. 때론 시선이 안정을 준다. 그것 뿐이겠

는가. 때로는 그 시선이 해결한다. 

한번은 은퇴 목회자가 어느 교회에 가서 공백기간 4개월을 줄곧 설교했다. 

이제 설교가 끝나는 안식일이었다. 마지막 식탁에서 자리잡는 일에 모두가 

바빴다. 그런데 한 전직 목회자 사모가 식사자리를 두리번거리면서 빈 틈을 

틈타 오늘의 목회자를 만나 대화하고자 하는 모습이 이 은퇴목사에게 역역

하게 포착되었다. 목회자가 말했다.’이리 오셔서 이렇게 앉으시지요!’ 그녀

는 자리에 앉았고 식사는 시작되었다. 정작 목회자는 식사시간 보다 상담역

시간임을 감지했다. 

그녀는 식사하는 자리에서 목회자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신중했다. ‘파도

가 일면 어떻게 주님 얼굴을 잃지 않겠지요?’ 했다. 그런 다음 ‘어떻게? 어

떻게!’ 그랬다. 하나의 몸부림이다.

이때 목회자는 말했다. ‘그래요! 사모님! 문제점을 바른 방향에서 포착하셨

습니다. 그런데 ‘파도’라구요. 사모님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다 잘 하

고 계시지요!  다만 한가지가 있지요. 항상 그대로 안정하시는 것이지요!

사모님! 풍랑 속에서 주님도 제자들이 탄 배를 두고 파도여 잠잠하거라! 그

랬지요. 사모님 곁엣 것들은 다 지나갈 것들입니다. 심령의 안전은, 믿음의 

안전은 닻과 같은 안정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계시는 꼭 한 자리 마음자리 

말입니다! 지금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이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그렇군요! 목사님은 저의 삶의 언저리

를 잘 보살피시고 계십니다. 바로 그 해결점에서 그렇게 도약하겠습니다. 

그리고 힘을 내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접근해 가겠습니다!’ 그랬습니다. 이

때 목회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모님, 하나 더요. 외로워 하는 순간을

이기시지요! 아까 ‘도약’이라고 하셨는데 ‘십자가상의 도약’ 말입니다. 마치 

시편을 다윗처럼 읽으면서 찬양하듯이 승리하시지요! 믿습니다!’ 했다. 이

때 그는 기쁨과 신념스러운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리고 한 두번 손을 

흔들면서 사라져 가셨다. 

그런데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를 뵙지 못했다. 그런데 요사이 듣자하

니 그녀께서 별세하셨다구요! 나는 아는 것이 하나 있다. 그녀가 어떻게 살

았을 것을…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6) 정녕 이것이 영생학이라면 그의 삶은 바로 영

생으로 실현될 것이다!  라고!

보이게 보이지 않게 성도 무리의 요구의 최고치로 응답하는 교장단의 응답

은 목회심리적인 반응과 해결에 대한 영의 심리적인 해결제시이다. 단순하

게 기쁘게 말이다. 하면 있고 하지 아니하면 없는 것 그것이 이 목회심리를 

오직 말씀과 성령의 역사 하심으로 잘 묶어 잘 구사하는 목양법에 있다 하

겠다.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수련되어야 할까! 인 것은 사실이다.

대수롭게 듣고 말하지만 말고 간결하게 정리해주고 해결되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성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참 목자이시다. 

각양 심리를 안정과 보장의 길로 인도하시면서 격국은 영생의 길로 인도하

신다. 주님은 과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마리아, 니고데모, 나사로, 

베드로, 요한,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 아니 우리 모두를 그리로 인도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별세하기 직전에 십자가상의 상담역에서 애절하는 한 죄수

에게 하늘을 선사하셨다. 오! 아름다워라! 구원의 신학이여! 그 죄수는 우리 

모두가 아닐까. 그 죄수는 우리 모두가 영의 메아리가 우리의 심령을 울리

면서 바빠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의 한 통속 지혜를 가지고 말로 지혜로 뿌리기만 하지 말고 

각인의 양의 심리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양의 마땅히 갈길을 제시하는 목자

상, 이것이 교장단의 최고치 활로인 것이다. 아니 그러한가!

삶의 가치와 진정성 보람이란 활약하고 약동하는 새 힘줄 선상에서 생명의 

빛으로 빚어진다. 전혀 아가페 사랑에 기반한 심리현상 치유법은 우리의 본

향가는 치유법이다. 이같이 그리스도의 사람의 정신이 사람에 대한 이해와 

치유의 정신에서 충만을 이룰 때 바로 이것은 양무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적성을 북돋아주는 것이 된다.

사랑을 되로 한 지혜의 그럴듯한 가르침은 메마른 지식에 불과해서 아쉬워 

떨며 영혼에 대한 사랑의 메아리가 없는 법이다. 영혼에 대한 진정한 사랑

이 있으면 그 영혼에 대한 속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게 될 것이기에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반응해야 한다는 성령의 지혜의 감각을 반드시 이해할 수 있

게 될 것이다. 오직 성령의 모든 것이 말이다.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자! 그리고 항상 ‘오! 하나님! 양무리에게 무엇을 어

떻게 해야 할지를 넘쳐나게 가르쳐 주소서!’하고 기원할 것이다. 그리고 마

음의 폭은 큰 폭으로 확대케 하자! 그리하면 반드시 신령함이 충만하게 넘

쳐나리라! 아멘!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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