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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후서 3:6절이 일곱째날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꿀 근거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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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의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의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 후 3:6)

 

일찌기 개신교회의 역사가인 코튼(Paul Cotton)은 이렇게 말했다.

"구약성서를 가장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한 기독교가 어떻게 십계명 중에 지켜야

할 계율로 제시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안식일 대신에 일주일의 첫 날을 신성한 날로 신봉할

수 있겠는가?"(From Sabath to Sunday, page 8)

이 내용에 답한 내용 글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이 개신교회가 일요일을 지키는 근

거로 삼는 내용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기독교의 해석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기독교인들이 지켜야 할

것은 성서의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신이라고 주장했다.(고 후 3:6) 초대 기독교인들이 구약

성서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사도바울이 취한 바와 똑같은 해석 방법을 취하였기 때문에 구약성

서의 말씀을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할 수 있었고 또한 동시에 또한 그러한 해석 방

법을 취함으로써 히브리인이 관례적으로 지켰던 바 안식일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았다."(The

Wisdom encyclopedia of the Bible 7권 578)

 

이상에서 말한 '기독교의 해석방법'이라고 했지만 성서적으로, 해석방법적으로 어불성설한 잘

못된 설명이다. 왜 그런가?

 

1. 성서적으로 잘못 되었다.

이상의 고 후 3:6절이 기록된 고린도후서는 학자들은 "AD 57년 봄일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데 "AD 70년 전후에 쓰여진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안식일을 '규례'적으로 지켰다는 기록

이 나온다.(행 13:14, 13:42, 16:13, 17:2, 18:3)

그런고로 서기 57년에 기록한 고 후 3:6절이 안식일을 폐한 근거가 되지 못한 것은 바울이 주후

70년까지의 정세 속에서 전도한 내용 글에 '규례'적으로 안식일을 지켰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도 바울이고 보면 만일에라도 안식일을 폐해도 된다는 성서적인 해석으로 고 후 3:6

절을 기록했다면 같은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규례적으로 안식일을 지켰을 리가 만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가?

그런고로 고 후 3:6절로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했다는 초기교회 설명은 성경적이지 못하고 빗

나갔거나 다만 위격다짐의 변명 글 설명일 뿐인 것이다.

 

2. 해석방법으로 잘못 되었다.

그래서 그것은 해석방법의 잘못일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기독교 해석방법', '사도 바울이 취한

해석방법', '구약성서의 말씀에 ...인정할 수 있는 해석 방법' 하는 것은 엉뚱한 설명이다. 이런 해

석은 옳지 아니하고 그것들의 연결성도 없다. 왜 그러한가?

'오직 율법의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하는 말씀은 율법의 조문을 무시해

버리거나 폐지해버린다라는 사도 바울의 요지가 전혀 아니다.

율법이라도 조문으로 지키지 말고 그 조문을 영으로 지켜야 한다는 뜻의 요지의 말이다. 복음이

되고 은혜가 되게 하는 것은 율법을, 안식일을 조문으을 따라 율법적으로 혹은 억지로 지키지 말

고 영(성령)으로 마음의 심비에 기록하며 은혜 되게 하라는 것이다.

이제는(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율법의 조문이 어디로 가버리거나 필요 없게 된

다는 말이 아니다. 여전히 율법은 있고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신조와 이론적인 신학과 예배의 형식에는 사람을 죄에서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다. '

따라서 '율법을 문자적으로 순종하는 것만으로는 '죽이는 것'이 된다. '영으로 (섬길 때) 살리는

것'이 된다.

 

사도 바울의 설명은 존재의 문제 여부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 기능의 여부 문제를 두고 하는 말

이다. 여기에서 이상의 '기독교의 해석 방법'은 잘못된 것이다. 전통이 되어버리면 바꾸기가 힘

들지는 모르지만 여기에서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다. 성서적이거나 성서의 해석방법이 아니다.

창조 당시의 안식일의 신성성이 왜 의문이냐 아니냐로 사람이 폐지여부를 말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라! 십계명의, 안식일의 의문이 정말 폐지했다면 그것을 범해도 되는 것인가? 이것이

성서해석 방법이겠는가? 절대로 아니다.

'모든 교회와 모든 신조에는 "영"뿐만 아니라 "의문"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의문"과

"영"이 있다. ' 그렇게 잘못 보면 성경의 글도 '의문'이 될 수 있고 '영'이 될 수 없다. 성서의 문자

적인 의미도 중요하고 정신적인 의미도 다 다같이 중요하다.

성경도 보는데 따라 '의문'이 되기도 하고 '영'이 되기도 한다.'성령의 소생시키는 능력이 없이는

어느 교회에서든 복음은 반드시 죽은 자구가 되고 만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상의 기독교 성경해석 방법'은 성경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나 잘못되어 있

다. 아마도 잘못되었다고 하기 보다는 잘못 되어지다 보니 변명의 말이 된 것이 아닌가! 성서에

그렇게까지 무지하지는 않는데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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