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로는 선교의 사명이 있다. > 신학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신학

2) 장로는 선교의 사명이 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영근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7.03 06:53 조회수 3,689
글씨크기

본문

1. 교회의 선교의 필연성
교회는 전도를 위해 조직되었다. 따라서 교회의 목적은 전도이다. 교회 안에 있는 목사나 장로와
같은 가장 높고 중요한 직책을 맡은 자들은 교회를 운영하는 최고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반
영하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곧 전도의 필연성이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전도의 정신이다. 거듭난 심령에게 제일 먼저 생기는 충동은 다른 사람들까
지도 구주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충동이다."(대쟁투 상 113)
"자기 자신의 영을 살아있도록 하는 것은 남을 위해 일하는데 달려 있다."(그리스도인 선교봉사
24)
전도정신은 마치 불길과 샅은 것인데 이 불길을 가만이 두게 되면 쉬 꺼지는 성질의 것이기도 하
다. 그런고로 이 불길이 계속 타오르며 가장 효과적인 것이 되게 하는 것은 전도자들과 장로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만 한다.
장로가 바쁘고 분주하다는 핑계 때문에 교회 안의 전도의 일을 그냥 처리하는 정도로 끝나는 일
은 보편적으로 장로가 범할 수 있는 전형적인 잘못이다. 바쁜 시간 중에서라도 시간을 쪼개고 열
을 내며 또 힘을 내서 전도하는 일 속에 뛰어들어야만 한다.
이렇게 살아가노라면 좀 어렵고 피곤할지라도 그의 유용성은 계속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며
개인의 사업 성장에도 복을 받는 것이 눈에 보일만치 하는 큰 경험을 스스로 하게 될 것이다.

2. 장로의 선교의 필연성
장로는 실제적인 전도운동 프로그램에 있어서 목사를 도와 목사와 같이 알고 그 일을 추진할뿐
아니라 솔선수범함으로 먼저 백성들을 훈련시킬 사명이 있다. 장로가 그것을 하지 않으면 성도들
은 일손을 아주 놓고 쉬게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전도운동의 조절은 때때로 수은주가 오르내리는 것과 같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늘 새롭게
대처하는 테크닉이 필요된다. 전도하는 교회는 반드시 활력이 있는 교회가 된다. 활력이 있는 교
회는 더 많은 전도를 위해 계획하고 추진하고 활동하게 된다.  이렇게 하는 교회는 살아 움직이는
교회가 된다. 결코 가만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활활타오르는 교회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장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은 전도의 시대이다. 그
런데 이상한 현상이 교회 안에 있다. 공언은 크게 하지만 실상은 아무 것도 없는 현실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전도라는 명제하에 거창하게 말은 하지만 그 안에 여전히 뛰어들지 않는다. 세 천사의 기별이니
곧은 기별이니 하는 엄숙한 스로간에 비하면 너무나 하는 일 없이 미미하고 초라한 것이 사실이
며 답보상태에 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재림하실 주님께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겠다고
공언은 하지만 실상은 너무나 미약하여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현실이다.
백성들은 세상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방불한 면면이 있다. 세상으로 밀려나게 하는 어
떤 중력이 있다. 이것이 예수의 재림을 지연시키는 요인이다. 분명히 우리는 바벨론에 속하지는
아니했으나 라오디기아교회 속에 속해 있는듯이 보인다.
이같은 말들은 누구를 원망하게 하기 위해서 발해지는 내용으로 받아드리면 손해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무능과 무활력과 부족을 깨우치는 전제로 발해지는 말로 이해 되어야 할 것이다.

3. 장로직의 경건한 모범
장로는 위를 쳐다보며 부여하시는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성령의 감동을 옷입고 일해야 한다.
성경에는 장로직의 모범이 있다. 그것이 모세 당시의 70인 장로인 것이다. "이들은 노령일 뿐
아니라 품위와 건전한 판단력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부조와 선지자 상 504)
"70인 장로들은 모세를 도와 이스라엘을 다스려야 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그분의 성령
을 부어주시고 그분의 권능과 위대하심을 나타내심으로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애래는 청옥을 편
듯 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저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였고 다만 그분의 임재의 영광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그분의 영광과 순결과 긍휼을 깊이 생각하고 저들의 묵상의 대상이신 그
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다."(상동 4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