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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받으라”[요 20: 22]는 의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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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당신의 십자가를 세우시고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

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 자신”이시지만 “인성 때문에 방해가 되어 모든 장소마다 당신이

친히 함께 계실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셔서 지상의 그분의 후계자로서 성령을 보

내시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장소 때문에 또는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접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유익을 얻지 못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구주께서 성령으로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 계실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께서

는 당신이 승천하지 않으신 것보다 그들에게 더 가까이 계실 것이었다. ” -시대의 소망, 669.


“성령을 받으라”는 의미는 그리스도의 죄 사함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의

미한다[행 3: 6; 빌 2: 13] . 성령을 받으면, “그렇게 되면 장소 때문에 또는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접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유익을 얻지 못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며. 구주께서 성령을 통하여 모든 사람

과 함께 계실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도 예수께서는 당신이 승천하지 않으신 것보다 [우리]에게

더 가까이 계실 것이다. ” 바로 이것이다. 성령을 받으면 구주께서 승천하지 않으신 것보다 더 가까이, 세

상 끝날까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계실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거룩한 능력, 성령의 능력이 제자들에게 주어졌던 것처럼 오늘날 그것은 올바로 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이 능력만이 우리를 구원받는 지혜가 있게 하고 하늘 궁정에 적합하게 해 줄 수 있다. 그

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해 줄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내가 이것을 너

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요 15: 11) 고 말씀하신다.

성령 안에서의 기쁨은 건강을 주는 기쁨이요, 생명을 주는 기쁨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우리에

게 주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고, 당신 자신을 세상에 건강과 생명을 주기 위한 거룩한 감화

의 근원을 만드신다. ” -교회증언 7권, 273.


오늘날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시지 않고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 계시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시지만 인성 때문에 방해가 되어 필요한 장소마다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없으셨다. 그러므로 “내가 떠나

가는 것이 유익이라” 말씀하시고 오순절 성령을 보내주셨으며 오늘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 안에 계신다.

우리가 마음 문을 활짝 열면. . .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당신의 십자가를 세우시고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

당하셨다. 우리가 전에는 길을 잃었는데 오늘날 우리는 당신이 보내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다[벧전 2: 24, 25] .


“내가 떠나가는 것이 유익이라 가면 그를 보내리니. . . 성령을 받으라. . .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

아 그가 우리 안에. . . ”[요 16: 7; 요 20: 22; 요일 3: 24] .


"성령께서는 보혜사, 그대의 보혜사이시다. . . 그분[성령님]께서는 항상 그대의 마음 문 밖에 기다리고

계시며 그분을 받아들이도록 항상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시다. 그분을 들어오시게 하라” -오늘도 하나님

과 함께, 158.

“T h e Hol y S pi r i t i s th e C om for te r , y ou r C om for te r . . . He i s a l w a y s w a i ti n g a t y ou r door ,

a l w a y s k n oc k i n g for a dm i tta n c e . L e t Him i n . ” T DG158.


의를 받는다=그리스도를 받는다=성령을 받는다. 이것은 같은 의미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 [시대의 소망, 388]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을 받을 때 주님의 임재로부터 오는 평안함이 임한다. 이것이 늦은비이며[ EW86] “그의 성령을 우

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요일 4: 13] .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시는 분이시며[눅 3: 16] , 우리가 성령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성령 받지 않으면 다른 영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우리는 불가불 세상의 패권을 잡

으려고 싸우는 두 큰 세력중에 전자가 아니면 후자의 지배 아래 있게 될 것이다. 흑암의 왕국의 통치를

받기 위하여 일부러 그것을 섬기기로 선택할 필요는 없다. 빛의 왕국과 관계를 맺는 것을 등한히 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하늘의 능력에 협력하지 아니한다면 사단은 마음을 점령하여 그것을 자신의 거처로

삼을 것이다. 악에 대한 유일의 방어는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내재시

키는 것이다. ” 시대의 소망, 324.


우리는 그리스도의 필요와 성령의 필요를 명백히 알아야 한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드러내고 그리스도

께 대한 우리의 필요를 느끼게 하며 우리 속에서 죄가 끝나고 죄악이 영속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나려면

죄 짐 맡은 우리 구주께서 죄가 들끓고 있는 현장인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셔야 하기 때문에 성령이 필요

하다. 성령을 받아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은 성령으

로 말미암는 것이며” [시대의 소망, 388] ,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 .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

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계 3: 20; 요일 3: 24] .


“어떤 사람도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악한 세력을 자기 스스로 내쫓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만 영혼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강제로 들어가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옛날

성전에 들어가셨던 것처럼 마음에 들어오지는 않으신다. 그는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 . ( 계 3: 20) ’[시대의 소망 161]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 24] .


오늘날 세상 형편을 보라.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

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

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 1-5] .


모든 죄는 죄로 더러워진 모든 사람의 마음 속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모든 악한 것이 속에서 나와서 사

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 23] .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오순절 이른비 때나 오늘날 더 큰 능력으로 반복될 오순절, 늦은비 때에도 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악의 세력은 여러 세기 동안 강해졌으며 이 사단의 속박에 사람들이 복종당하게 된 것

은 놀라운 일이었다. 죄는 신성의 제 삼위의 강력한 작용을 통하여만 물리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으며,

그분은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가운데 오실 것이었다. ”


늦은비가 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바로 죄로 더러워진 여러분과 저의 마음[ h e a r t ] 속에 임하신다는 것. 

이른비나 늦은비는 모두 보혜사 성령으로서 초대교회 당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초대교회 제자들 마음속에 임하셨고[사도행적, 37, 38] , 오늘날 늦은비 시대에 성령께서는 우리 구주 예

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우리 마음 속으로 들어오신다.


“그 때[오순절 이후]부터는 그리스도께서 성신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들 마음 속에 항상 거하시게 된 것

이다. 그리하여 저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계가 그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셨던 때보다 더욱 밀접하게

되었다. 내재( 內在) 하신 그리스도의 빛과 사랑과 권능이 저들을 통하여 비치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행 4: 13) 알았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제자들에

게 구주가 되신 것처럼 오늘날의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다. ” -정로의 계단, 75.


지금은 그의 신을 무한히 부어주실 늦은비의 때이다. “우리가 실제적인 그리스도인 덕성을 구현하는 일

에 날마다 전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늦은비 때에 성령의 나타남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심령[마음; h e a r t ]에 내릴는지 모르나 우리는 그것을 식별하거나 받지 못할

것이다. ” -목사들에게 보내는 증언, 507.


우리는 역사적인 예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그는 죄의 세력( p ow e r o f si n ) 에서 우리를 건져주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약 2, 000년 전에 우리 죄를 없이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2, 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마음속에서 들끓는 죄( 시기심, 질투, 악한 원한, 정욕 및 야심 등) 는 아직도 우리를 죄의 포

로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상의 그리스도가 우리 각 사람에게 체험적인 그리스도, 현재의 그

리스도, 우리 각 사람에게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되도록 바로 지금, 이 시간, 현재의 구세주로 모셔야 합

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에는 예수께서 외적으로 임재하셨지만, 그 이후로는 내적 임재로서 성신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들 마음속에 항상 거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 제자들은 그가 개인적으로 저희와 함께 계셨던 때보다 그와 연합된 관계가 더욱 밀접해졌습니다.

내재( 內在) 하신 그리스도의 빛과 사랑과 권능이 저들을 통하여 비치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이

상히 여기며 또 그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 행 4: 13) 알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처음 제자들에게 구주

가 되신 것처럼 오늘날의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개인적 구주가 되십니다.


“그리스도교는 죄를 사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의 죄를 제거한 다음에 그 빈자리를 성령의 은혜로

채운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또 신령한 빛으로 마음을 밝히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빈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심으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령을 다스릴 때에 그것은 순결하게 되고 죄에서 해방된다. 그리하여 복음의 계획의 영광과 충만함과

완전함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완성된다. 사람이 구주를 받아들이게 될 때, 완전한 평화와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확신의 빛을 반영하게 된다.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과 향기로

하나님께서 진실로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구주로써 보내셨다는 것을 증거하게 된다. ” 실물교훈,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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