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사조에 따른 사명감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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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사조’라고 하면 신학 이론이나 론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쉽습
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신학, 신학 하면 반드시 신학사조의 시대적인 흐름같은 배경이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말하면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예언성취에 관한 시대적인 흐름
같은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신앙사상 같은 골격이 응집되어야 합
니다.
구약신학이나 신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같은 것이 주요하다면 머리라
고 해 두고 실천신학이나 선교신학 같은 것은 손과 발, 그리고 선포일 것입
니다. 그래야 통채로 살아움직일 수 있습니다.
신학이 신학 대로만 있으면 죽은 몸입니다. 활동으로 생명체가 약동해야 산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실천신학이고 선교신학입니다.
따라서 참 신학의 정진은 시대적인 흐름을 따라 시대적인 사조와 흐름에 민
감해야 할 것입니다. 사명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것은 물론 재
림성도의 향방에 대한 분별력이 필수가 될 것입니다. 소위 깨어있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를 만나 승천하는 과정으로 우리의 삶이 전개 되게 하기 위하여 말입니
다. 이것에 대한 성공없이 신학이란 무의미합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구약사를 살펴보면 제 개인으로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면에 있는 신앙상이 부끄럽기 그
지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부끄러운 역사는 그 다음에 있는듯 합니다. 이 이야기는
BC331년쯤 이야기이지요. 이때쯤 히브리민족의 대제사장이 나라의 왕권
을 가지고 있던 미묘한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대제사장의 형제가 있었지요. 이 형제는 대제사장이 오랜 시간 동안 나라를
떠나있던 때를 기회로 노렸지요. 대제사장이 부재시에 멀리있는 헬라의 도
움을 요청했지요. 자아보존의 법칙에 눈이 먼 이 형제는 자기 대권의 길을
갈망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때 헬라는 적기이며 호기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히브리민족의 문제
점을 호제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어지간이 일 처리가 맘무리 되어가고 있
었습니다. 바로 이때쯤 해서 다시 돌아온 실권자 대제사장이 이 사건의 전
말을 알아차리고는 헬라에 더 크게 자신의 보장이 되어줄 것을 의뢰했지요.
이때쯤 해서 대제사장은 형제문제를 잘 처리하고 헬라를 타도했어야 했던
것인데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망국이 자신의 판단에 놓인 잊지 못할 큰 실
례입니다.
헬라는 어느 누구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헬라의 유익은
호기이면 가릴 바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헬라의 유대국을 무혈점령
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주 순탄하게 말입니다. 언어 마져 히
브리어 대신 헬라어를 써야만 했습니다. 물론 슬픔과 굴욕이었습니다.
이런 연고 때문에 신약의 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되기도 했지요만. 이리
하여 BC 331-168년까지 유대국은 헬라의 식민지국이 되었습니다.
이상의 역사 이야기는 두고두고 세계역사상 어이없는 이야기가 되었습
니다.
여기에서 배울 교훈 하나가 있습니다. 사람이 자아라는 비대증은 위험
하다 라는 것입니다. 시야를 잃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남도 나라까지
허물고 맙니다.
오늘날은 신앙상의 적신호가 많은 시대인 것만 같습니다. 오로지 ‘남은
자손’은 재림신앙으로 이 시대를 살며 확고부동하며 열열한 신앙가짐
으로 이 시대를 분별하면서 잘 살자는 것입니다.
시대가 많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말세에는 거짓 가르침이 있고 또 흔들
림의 시기가 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연구와 같은 예언서 연구에 충실
할 뿐만 아니라 항상 깨어 분별력있는 신앙상을 잃지 않아야만 하지요.
지나간 시대를 뒷돌아보면 꽤 그럴듯하게 보여졌던 몇몇 분들이 진리
에서 떠나간 것을 보아왔지요. 성도님께서는 이를 어떤 시각으로 보았
던가요.
또 요사이 한국에서 타락하여 배도한 자가 나타나 자신이 몸담았던 교
회, 곧 재림교회를 향해 서슴없이 ‘이단’이라고 몰아세우는 모습도 관
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교회 지도자들이 본 교단을 비진리로
해설하는 자들이 있어 보입니다. 앞으로 시대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러한 시대에 성서신앙에 굳게 서고 분별력을 가지고
대처하면서 복음소명에 충실해야 할 것으로 고려됩니다.
예언의 신의 말씀에 의하면 종말의 시대에 우리 재림교회 안에서 우리
를 적대시 하는 이들이 나타날 것을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가
혼란 스럽고 세속화의 열풍이 일고 세상의 전망이 어둡고 변모해 가며
어그러져 가는 시대에서라도 우리는 여전히 더 한층 깨어서 ‘남은 자손’
의 신앙생활에 성공적으로 열중하며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미주에 계신 재림성도 우리들의 불리한 조건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라는 넓고 성도수는 적고 전도밭은 거의 없어 활기찬 활동화하는
열기있는 모습을 훈련해가지 못하는 탓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교
회가 한산할 수록 우리는 서로 격려하면서 믿음과 사랑을 나누는 교
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재 각성하면서
이 시대를 승리로 이끌어가야 할 시대인 것 같아 몇자 우리의 신앙과
사명감의 소감을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예언의 신 말씀 한 구절을
말씀드리고 끝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의 보다 높은 능력은 강해지고 고상해지
며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자격을 갖추게 된다. 많은
세상 학자들은 너무 교육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일반 시람들과 접촉
할 수 없다. 그들의 지식은 너무나 난해하다. 그것은 높이 치솟기 만
하고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지성적인 실업가들
은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 계실 때 사람들에게 주신 것과 같은 단순
한 진리, 그분께서 영이요 생명이 되도록 하는 진리를 바란다. 그분
의 말씀은 생명나무의 잎사귀와 같다. 오늘날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남녀들의 생애에서 반사된 그리스도의 모봄
의 빛이다. 진리를 위한 가장 강력한 지성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
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지배하고 고상하게 하고 순결하게 하는 지성
이다.’(교회증언 9. 144)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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