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교회사에 나타난 E. J. 왜거너는 어떤 사람인가? - 그의 신앙과 삶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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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신학자료 2 - 복음을 전하던 의사가 분열의
선봉이 되기까지 - E. J. 왜거너의 삶과 신학’
‘엘릿 조셉 왜고너(Ellet Joseph Waggoner, 1855-1916)는 …재림교인
의사, 목사, 교사, 편집자, 부흥설교가 등으로 일했다. 그는 1888년 미니애
폴리스 대총회 회기의 여파로 일어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부흥과 관
련된 ‘기별자들’ 가운데 하나로 부상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늘 그의 동료
목사이자 편집 동역자였던 A.T. 존스와 결부되며 이 역동적인 2인조는 재
림교회 역사에서 ‘존스와 애거너’라는 전설적인 인물들로 알려지게 되었다.’
(454 페이지)
‘1903년부터 1916년 그가 죽을 때까지의 기간은 재림교회에 더 이상 새
로운 신학적 영향을 끼치지 못한 영락의 기간을 대표했다. 그러므로 1901-
1908년의 기간은 왜거나와 엘렌 화잇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
1901년까진 그녀가 왜거너와 그의 저작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1901년 배틀크릭 대총회 회기 후에 그녀는 그의 견해들에 대해 깊
이 우려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범신론적 경향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
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에 대한 공상적인 견해’라고 일컬었는데 그것은 그
녀가 17세 때 봉사를 시작하면서 반대하라고 요청받은 ‘하나님에 대한 오
전과 흡사했다.
1903년 10월 3일에 그녀는 그런 ‘공상적인 견해’가 결과적으로 ‘배도, 강
신술, 자유연애주의’를 몰고 올 것임을 내비쳤다. 3일 후 그녀는 왜거너의
교묘하고 부정한 자유연애주의에 직접적으로 맞섰다. 사단은 ‘그대를 강신
술이 미궁 속으로 빠뜨리고자 한다. 그는 그대의 애정을 그대의 아내로 부
터 떼 내서 다른 여인에게 고착시키고자 한다. 1908년에 엘렌 화잇은
왜거너의 사상들이 ‘1844년의 시기를 지낸 후 우리가 광신주의 운동을
보았던 여러 곳에서 그것들을 만나 질타했던 사상들과 성경적으로 유사하
다. ‘라고 거듭하여 말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분명하게 말했다. ‘왜거너
의사는 그때(1901년) 영적인 친밀성에 관하여 그가 주장한 교리로 믿음
에서 떠나가고 있었다.
엘렌 화잇은 1901년과 1903년에 이런 무서운 경고를 하면서 계속하여
왜거너의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메이건과 서덜랜드에게 편지를
써서 ‘배리언 스프링스에 있는 학교(선생)으로 대려와서 ‘튼튼한 토대 곧
만세의 반석 위에 그의 발을 두도록 도우라’고 권면했다. 그녀는 ‘그가 이
전의 정결함과 능력을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낙관적으로 표현했다.
비통하게도 이런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왜거너의 이런 공상적인
‘견해들’은 결국 그를 이혼과 재혼으로 몰아갔을 뿐 아니라 교단 직책에
서 떠나는 일로 이어졌다.(1904년) 그의 삶의 마지막 10년 동안 그는
은거 해 살았다. 한때 ‘그리스도의 비길 데 없는 매력’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강력한 ‘기별자’였던 그가 그의 감화력과 능력을 모두 박
탈당한 것이다.’(45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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