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 기별이 휩쓸었을 1888년 직전에 주신 예비적 기별"--- A. G. 다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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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직전에 주신 예비적 기별로 준비가 되었더라면
1904년부터 과거 20년 간은
1888년에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기별이 휩쓸었을 것이다."
1888년에 미네아폴리스 총회 바로 직전에 주신
예언의 신의 기별을 주의 깊이 살펴보자.
1887년에 주어진 기별들
1887년에 주어진 예언의 신의 증언들은 위험에 대한 경고였다.
그 증언들을 통하여 특별한 죄, 곧 교회가 빠져 들어가고 있는 기만이 반복해서 지적되었다.
그 속임수는 형식주의화 하고 있는 치명적인 오류라고 지적되었다.
그것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통을 통해서만 얻는 영적 체험을
형식과 의식과 교리, 기구 그리고 활동 등으로 대치해 버렸다는 것이다.
일년 동안 계속 리뷰 앤드 헤랄드지에 게재된 기별을 통하여
이 특별한 위험이 목사들과 백성들 앞에 제시되었다.
그때의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당시 주어진 몇 인용구들을 통하여 경고하심을 알 수 있다.
(1) 첫째 경고:
“형식적이고 부분적인 신자가 될 수는 있어도, 부족함이 드러나서 영생을 상실할 수도 있다. 성경의 어떤 명령들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보일지라도, 그리스도인 품성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구비 조건에 결함이 있으므로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7년 1월 11일).
(2) 둘째 경고 : (2주일 후)
“외적 형식들을 준수하는 것으로써 인간 영혼의 그 큰 필요를 결코 충족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단순히 그리스도를 공언하는 것만으로서 그 큰 심판의 시험에 견디도록 준비시키는 일에 충분할 수가 없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7년 1월 25일).
(3) 셋째 경고 : 3주일 후에 분명한 기별이 다시 주어졌다.
“교회에 형식이 너무 많고 영혼들은 빛과 지식을 받지 못해서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빛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빛의 근원이 되시는 분과 연결되어야 한다 …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된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의 증거에 대해서 잘 알런지는 모르지만 마치 그럴듯한 무화과 나무와도 같이 세상 앞에서는 그 무성한 잎을 휘날리지만 주님께서 살피실 때 열매가 없는 것이 나타났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7년 2월 15일).
(4) 넷째 경고 : 2주일 후에 또 중요한 특성을 나타내는 기별이 임했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불의가 충만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높은 상태, 곧 높은 영적 상태(영성)에서부터 타락한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와같은 말씀을 엄숙하고 우리 심령을 통찰하는 능력과 함께 올바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형식적인 종교 의식이 계속되고 있기만 하지 어디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찾아볼 수 있는가? 영성은 죽어가고 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마음과 결합할 수 있을까? 실제적인 경건에 더욱 착념하고 기계적인 외적 꾸밈에는 덜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리뷰 앤드 헤랄드 1887년 3월 1일; 교회증언 5권 538, 539)
형식이 교회 안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과 우리는 너무나 형식과 의식과 이론과 기계적인 정리 정돈과 반복되는 활동만을 의존해 왔다는 것 등을 경고하라는 기별이 일년 내내 계속적으로 반복되었다. 물론 이와같은 기별들은 사실이었고 그 기별들은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러나 형식주의는 가장 기만적이요, 파괴적인 성질의 것이다. 이것은 교회를 거의 파선할 지경까지 이끌고 가는 예상 밖의 숨어 있는 암초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 없는 “경건의 모양”이 이 마지막 때 위기 중의 하나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기만적이고 매혹적인 그 위험으로부터 돌아서라고 권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거듭 반복해서, 그리고 온갖 방법을 모두 동원하셔서 당신의 교회로 하여금 형식주의의 위험을 벗어나도록 경고하신다.
1887년 예언의 신을 통하여 반복해서 기별을 주신 것은 바로 이 위험한 기만을 대항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보내셨다.
이 운동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것은 영광스럽게 승리할 것이다. 그 조직은 하늘에 속했으며,
그 안의 부서들은 바퀴 안의 바퀴로서 모두가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바퀴 안에서 힘과 속력을 내게 하는 성령이 안 계시면 그것들은 불완전하고 조화가 깨어질 수 밖에 없다.
이 바퀴들은 남녀들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남녀들에게 활동보다는 성령의 침례를 주신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들의 생애 가운데 성령의 권능으로 침례받으면,
훌륭한 주님의 기계들이 되어 빠른 속력으로 지정된 사업을 이루기 위해 전진하게 된다.
이런 일은 집단적으로 보다는 이에 앞서 먼저 개개인의 체험을 통해 깨우쳐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련해 두신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 일인가?
그러나 이론과 형식과 활동과 기계적인 조직을 대치시키라는 경고만을 받지 않았다. 이런 경고와 함께 우리가 표류하는 상태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정확하게 알려 주는 직접적이고 강력하며 적극적인 기별이 주어졌다. 그 전체적인 기별을 여기에 모두 기재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부록에서 충분히 드러난다(부록 146-152 참조). 그러나 다음에 인용하는 몇 구절만으로도 그 기별이 내포한 중요한 의미와 만일 그 교훈에 유의하기만 하면 교회가 간직할 수 있는 희망찬 사상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장 크고 긴급한 요구
“우리 중에서 참된 경건의 부흥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요구 중에서 가장 중대하고 긴급한 것이다. 이것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들의 첫 과업이어야 한다. 주님의 축복을 받으려는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축복을 우리들에게 주시려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받을 만큼 준비되어 있지 못한 까닭이다. …
교회 안에는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진지하고 효력있는 기도에 연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일을 시작하여야 한다. 기도는 더욱 많이 하고 말은 더욱 적게 하여야 한다. 죄악이 성행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영적 능력도 없는 경건의 모양에 만족하지 말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
우리는 외부에서 오는 위험보다 안에서 오는 것을 훨씬 더 두려워하여야 한다.
능력과 성공에 대한 장애물들은 세상에서 오는 것보다도 교회 자체에서 오는 것이 훨씬 더 큰 것이다. …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든 장애를 없애버리므로 길을 깨끗이 하고, 그리하여 주님께서 시들어가는 교회와 참을성 없는 교인들에게 그의 성령을 부어 주실 수 있게 되는 일보다 사단이 더 무서워하는 것은 없다.
만일 사단이 그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한, 세상 끝까지 작든지 크든지 어떤 각성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술책을 몰라서는 안 된다. 사단의 능력은 저항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을 준비가 이루어지면 축복이 올 것이다. 사단은 축복의 장마비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내리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으며 비가 땅에 내리지 못하도록 하늘의 창문을 닫아 버릴 수도 없다. 악인들이 하나님의 사업을 훼방할 수 없으며, 만일 그들이 겸손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고 버리며 믿음으로 그분의 약속을 주장하면 하나님을 대면하지 못하도록 그분의 백성의 회중에서 제외될 수 없다. 모든 시험과 모든 반대 세력은 공공연한 것이든, 숨겨진 것이든지 간에, 성공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이처럼 두렵고 엄숙한 시기에 처한 우리의 상태는 어떠한가? 슬프도다. 교회에 만연된 이 교만, 이 위선, 이 기만, 의복에 대한 사랑과 경솔한 언동, 향락에 대한 사랑, 이 지위욕, 이런 것들이 다 무엇인가? 이런 모든 죄악들이 마음을 어둡게 가리고 있어 영원한 사물들이 분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7년 3월 22일).
그것은 얼마나 엄숙한 기별이며, 동시에 얼마나 부드럽고 희망찬 권면으로 가득한가! 만일 교회가 그 권면을 신실히 유의하기만 한다면 교회의 전도(前途)는 얼마나 희망찬가! 이 위대한 진리가 리뷰지의 서류철 속에 묶여진 채로 그토록 오래 사장되어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지금은 마치 에스라가 잃어 버렸던 모세의 율법책을 찾아내어 그 속에 기록된 교훈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읽어준 것처럼, 이 기별을 다시 드러내어 분명하고 강력하게 교회가 주목하도록 해 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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