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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을 평한다 - '나를 잃어가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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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메스콤 어디선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개하는 설명을 들었다. 퍽 진지했다.

‘나를 잃어가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는 추스름 이었다. 얼핏 들을 때 그럴사 하게 호감가고 맛 들일 내용처럼 들렸다. 관심이 들어서 하던 일을 멈추고 들었다. 한편 과연 그러할까? 싶어서였다.

얼핏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많이 생각하고 잘 짜여진 이성적이고 심리적이고 논리적인 말의 펼침 이었다.

산뜻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한편 그러지 않아도 세상사람들이 대부분 그 노선을 가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복수, 복수 하곺은 생각이 든다….그러하다고 하여 복수한다는 말은 아니다. 보복…상처를 입고...왜 보복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라는 식의 전개 이야기에서의 도출이다.

결국 내가 나를 보호하고 애끼기에 그 한계를 지킨다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이타를 떠나 하나의 자아중심적인 에고이즘의 원리의 일순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심리는 내가 같이 불명예스럽고 손해나는 일이라면 의로운 일에도 불이익의 길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는 것과 한 길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포인트는 지켜야 할 관계가 내가 중심이고 내 자신을 내 스스로 지켜가야 하는 취사선택의 길이니깐 그러할 수 밖에 다른 여지의 길이 없지 않을까.

어쩌면 그 설파가 멋진 이론 같지만 같이 수용하거나 응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예수는 신의 자격까지 잃어가는듯 하고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당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지켜야 할 관계를 지켰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가 죽을 때 한자리에 같이 있으면 자기도 잡혀 혹사 당할 가능성이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일지라도 굳이 예수 곁에 있었다.

사도 베드로는 요행히 피하여 그것이 살 길이었지만 다시 돌아가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성경의 여로에는 이러한 표지판이 많다. 자아가 없을 때 이익도 명예도 직위도 재산도 생명도 포기하며 지킬 것을 지키는 경우가 있는 것이 신앙의 가도이다. 

장망성 가는 그 길목의 노변 언저리엔 그 표시와 첵크가  많다. 어쩌면 엇비슷한 통로가 같은 길인 것 같이 이론적이지 만 결국 어떤 길은 상반되게 다른 길이 될 수 있다.

분별할 수 있는 것을 분별하게 하는 것은 주님을 중심축으로 생각할 때 비로서 주님 아닌 나의 길로 나의 선택으로 달라지기 마련이다. 마치 로마 총독 빌라도의 순간 선택의 길처럼…주여! '주의 길을 목전에 곧게 하소서'!(시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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