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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대화한 사람(요 3:1-3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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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의 요점은 무엇인가?

거듭남의 진리였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대화의 광장이었다.


1) 니고데모는 밤에 찾아왔다.

율법서를 공부하기 위하여 밤에 왔다는 견해도 있지만 공연히 알려지기를 꺼려했기에 누구도 모를 밤에 세상의 비난과 조롱을 피하여 감람산 위에 계시는 예수님의 거처를 물어서 찾아왔다.(상동 1권 217-218 참조)


2) 니고데모는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이라고 말했다. 사실은 메시야 이심을 알아야 했다.


3)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라' 가르치셨다.

니고데모는 이교사상에도 거듭난다는 교리 곧 어른에게 우유를 먹여주는 것 같은 교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소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나라'(again)는 말을 듣고 그는 화가 났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참 의미는 ‘하나님으로 부터 나라'(from above)는 뜻이었다. 잠시 동안 니고데모는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요한복음 3장이 그렇듯 중요하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미와 체험, 그리고 새로 거듭남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이 경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이치를 일방적으로 가르치셨다.

물과 성령으로 남, 그리고 바람처럼 변화하는 이치를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기까지 친숙한 질책을 하셨다.

‘니고데모의 마음은 지금 그리스도께로 끌려가고 있었다. 구주께서 거듭남에 대하여 그에게 설명하셨을 때에 그는 이 변화가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갈망하였다.’(상동 226)


5) 거듭남이란?

영적으로 나는 것을 의미한다.(롬 2:28-29, 9:6-7, 10:12-13, 갈 3:9, 28-29) 회개와 새로 남은 새 생애의 시작과 동일시되는 의미이다.(요 1:13, 롬 6:3-6, 고후 5:17, 엡 4:22-24, 골 3:9-11)

거듭나는 것은 썩어질 씨로 되는 것이 아니고 썩지 않을 씨로 되는 것이다.(벧전 1:22-23 중생의 씻음(딛 3:5)의 진리로 난다.(약 1:18)

하나님을 향하여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한다.(벧전 1:3) 

‘사람이 믿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때에 축복이 임하다. 그때에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능력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로운 피조물을 창조하는 것이다.’(상동 178)

‘니고데모는 그 교훈을 받아들이고 그 교훈을 마음에 간직하고 돌아갔다. 그는 성경을 새로운 방법으로 연구하였으니 곧 이론을 변론하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을 얻기 위하여 연구하였다. 그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복종 시켰을 때 그는 하늘나라를 비로소 보게 되었다.’(상동 227)

우리의 지혜, 지식, 명예, 지위, 재물, 권위, 권력, 인기, 인정, 공로 등은 하늘 가는데 전혀 무력하다.

오직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침례와 충만을 힘 입어서만 이루어진다. 반석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부딪혀 산산히 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속에 그리스도만이 전부를 이루어야 한다.


6) 니고데모의 마지막 생애는 어떠했는가? 

니고데모는 에수님을 만나본 이후로 얼마동안 공적으로 그리스도를 신인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생애를 주목하고 그의 교훈을 숙고하였다. 그는 불뱀의 교훈을 생각했으며 그의 회견에서 비쳐온 빛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

예수님이 환란을 당하실 때 제사장들의 계략을 여러번 꺾었다.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 위험에도 불구하고 100근쯤 되는 향유를 가지고 그의 무덤을 찾아왔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도 어린 교회의 육성을 위하여 그의 재물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의심이 많던 그가 바위처럼 굳게 섰다. 전일에 자기에게 경의를 표명했던 사람에게로부터 오는 반대로 박해와 조롱을 받았다.

그는 모든 것에서 탈피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중생의 생애를 산 우리의 모본이 되었다. 사람이란 사람이 무엇을 소유했을 때 그에게 공손하며 아부한다. 반대로 그것을 잃었을 때 불경하며 그를 외면한다. 사람이란 자기에게 유익할 때 추파를 보내면서 포옹하고 무익할 때 냉혹하게 차버린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잃고 채이고 외면 당했으나 그 보다 수 백배 더 좋은 것을 소유한 자가 되었다. 사람이란 번영할 때 모여들고 난국일 때 흩어진다. 그러나 니고데모와 요셉은 제자들의 전성기에 질투하지 아니하고 난국이 될 때 앞장섰다. 어두운 밤길, 그들은 등불같은 귀감이 되어 우리를 교훈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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