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두 아들”--- 1888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대표자들에게 배부된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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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이 거짓 교사들은 갈라디아 형제들에게 전심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서 그들 자신의 행위를 신뢰함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고 그렇게 함으로 약속의 후사들이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자 하였다.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던 것을 잊었다. 내 자신도 아브라함에게 한 명 이상의 아들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어떤 유대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육신을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면 약속된 유업을 보증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 9:8). 아브라함의 두 아들 중에 하나는 육신을 따라 태어났으며 다른 하나는 약속을 따라 성령으로 태어났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히 11:11). 하갈은 애굽인 계집종이었다. 계집종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자유인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종이 된다. 그러므로 하갈은 종이 되는 자녀들만을 낳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태어나기 오래 전에 그의 종 엘리에셀이 후사가 되기를 원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에게 약속하신 후사는 아무리 그의 집에서 태어난다 할지라도 종은 후사가 될 수 없으며 오직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라야 된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하늘 나라에 종들을 두지 아니하신다.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두 언약은 어떠한 것인가? 두 여자 곧 하갈과 사라이다. 하갈은 시내산으로서 “종을 낳은 자”이다. 이것은 마치 하갈이 종외에는 다른 아이들을 낳을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선포하신 율법은 자유한 사람을 낳을 수 없다. 율법은 다만 종으로 만드는 일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시내산에서 한 언약이 이와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언약은 단지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한 약속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율법 자체가 가진 것 이상으로 그들을 자유롭게 만드는 능력―그들이 이미 종으로 있었을 때에 가졌던 것―이상의 능력이 없었다. 오히려 율법은 “종을 낳은 자”이다. 그들이 언약을 한 것은 단순히 그들 자신의 행위로 의롭게 되겠다고 한 약속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인간 자신에게는 그 언약을 이행할 만한 아무런 능력이 없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죄의 속박 하에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깨뜨리고 나올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율법의 선포는 그들의 처지에 어떤 변화를 주지 않았다. 어떤 새로운 면이 소개되지 않았다. 예를들어 어떤 사람이 범죄로 감옥에 있다고 하면 법조문을 그에게 읽어 줌으로 감옥에서 풀려 나오게 할 수가 없다. 그를 그곳에 집어 넣은 것은 법이었으므로 그에게 그 법을 읽어주는 것은 오직 그의 감금을 더욱 중하게 해줄 뿐이다.
그러면 하나님 자신이 그들을 종이 되도록 이끌었는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시내산에서 그런 언약을 하도록 이끌지 않았다. 그로부터 430년 전에 아브라함과 아주 유효적절한 언약을 하셨었다. 그 언약을 그리스도께서 확증하셨으며 그것은 하늘로부터 주신 언약이었다(요 8:23 참조). 그 언약은 의를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 오직 믿음으로 받을 것이었다. 이 언약은 모든 민족에게 다 주셨다. 이스라엘의 자손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실 때에 행하셨던 모든 이적들은 오직 우리와 그들을 죄의 속박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은 그 자체가 그들을 죄의 속박에서 인도해 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과시일 뿐만 아니라 그들을 죄의 속박에서 구원해 내시려는 그의 간절한 소망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시내산에서 한 언약은 인간을 속박한다. 왜냐하면 하갈은 시내산에서 한 언약으로서 애굽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은 단순히 이미 한 언약을 그들에게 언급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출 19:5) 어떤 언약을 언급하고 있는가? 두말할 나위없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언약으로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었다. 만일 그들이 단순히 하나님의 언약 곧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면―믿음을 지키면―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온 세계의 소유자로서 그가 약속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이행하실 수 있었다. 그들이 자신만만하여 성급하게 책임을 진 사실로서 하나님이 그들을 그 언약을 성취하도록 인도하셨다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 하나님은 그들을 종 노릇하는데서 인도하여 내셨지 종살이 하도록 인도하지 않으셨으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한 말로 시내산의 언약은 종 노릇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만일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자손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라”(롬 4:12) 행하기만 하였더라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롬 4:13)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의롭다 해 주고 의를 행하게 한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졌었다면 아브라함이 가졌던 의를 가졌었을 것이다. 그랬었다면 “범죄함을 인하여 더한” 율법이 가입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었다. 율법이 그들의 마음에 있었을 것이므로 그들의 상태를 느끼도록 하기 위하여 뇌성벽력으로 일깨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시내산에서 선포한 율법에 의하여 의를 얻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으셨으며 지금도 기대하지 않으신다. 시내산에서 있었던 모든 일이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율법은 진리이며 또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하여 내신 것은 “저희로 그 율례를 지키며 그 법을 따르게 하려 하심이로다”(시 105:45). 우리가 계명을 지킴으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므로 우리가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언약은 병존함
사도 바울이 두 여자 사라와 하갈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고 한 말씀에 주목하라. 그러므로 이미 아브라함의 시대에 두 언약이 존재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이 두 언약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보따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언약은 시간의 제한을 받는다거나 조건이 따르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언약 시대가 지나갔기 때문에 누구나 옛 언약 아래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옛 언약의 시대는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 4:3)라는 의미에서만 지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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