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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의한 의의 소망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이 구절을 한번 이상 읽지 않고는 지나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이 구절에서 말씀하지 않는 어떤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 구절을 읽으면서 성령의 약속에 대해서 이미 배운 것을 생각해 보자.

이 구절에서 우리가 성령을 가지고 있으므로 의를 기다려야 하는 것을 가르친다고 생각지 말라. 결코 그렇지 않다. 성령은 의를 가져다 준다. “영은 의를 인하여 산것이니라”(롬 8:10). 성령이 왔을 때에 의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깨닫게 할 것이다(요 16:8 참조).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 자는 죄를 깨닫게 되고 그에게는 없으며 오직 성령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의를 역시 깨닫는다.

성령이 가져다 주는 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율법의 의이다. 우리가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롬 7:14)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을 통해서 기다리는 “의의 소망”은 무엇인가? 이것은 우리가 성령을 통하여 의를 바라며 기다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의의 소망을 곧 의를 소유함이 가져다 주는 소망을 말하는 것에 주목하라. 이 문제를 좀더 자세하게 생각해 보자. 이미 공부했기 때문에 단지 마음에 되새기는데 불과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1. 하나님의 영은 “약속의 성령”(엡 1:13)이다. 약속된 성령이 아니고 그것을 소유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에게 보증하는 성령이다.

2.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녀로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유업이다. 성령은 이 값을 지불하고 얻은 유업을 되찾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실 때까지 이 유업의 보증인 혹은 담보자가 되신다(엡 1:13, 14 참조).

3. 이 약속받은 유업은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3)이다.

4. 성령은 의를 가져다 준다. 왜냐하면 성령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우리의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셔서 우리의 마음에 거하시도록 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요 14:16-18 참조).

5. 그러므로 성령이 가져다 주는 소망은 의를 소유할 때에 가져다 주는 소망이다. 곧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유업의 소망으로서 새롭게 된 땅이다.

6. 성령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의는 돌비 대신에 성령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의 의이다(롬 2:29; 고후 3:3 참조).

7.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요약해 보면 이렇다. 만일 우리가 전적으로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또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있지 않고 따라서 선한 것이 우리로부터 나올 수 없으며 우리 자신이 율법을 행할 수 있을만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에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입어 율법의 의로 충만하게 되도록 허용한다면 우리 안에 산 소망이 계속있게 될 것이다. 성령의 소망―믿음에 의한 의의 소망은 그 안에 조금도 불확실한 요소가 없다. 그것은 확실한 보증이다. 다른 어떤 것에도 소망이 없다.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가지지 않은 자는 전혀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직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만이 “영광의 소망”이다.


믿음에 능력이 있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여기에 “효력이 있다”로 번역한 말은 누가복음 13장 24절과 사도행전 15장 10절과 6장 10절에서 “능히… 할 수 있다”로 번역된 말과 같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는 “할 수 있느니라”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할례나 무할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만이 할 수 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이런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행위에 대한 말이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율법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그의 지위나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율법을 행할 수 없다. 무할례자도 율법을 지킬 능력을 가지지 않았고 할례자도 율법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어떤 사람은 그의 할례를 자랑할런지 모르며 다른 사람은 그의 무할례를 자랑할런지 모르지만 둘다 같이 헛된 것이다. 믿음의 법에 의해서 자랑이 없어진다(롬 3:27 참조).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믿음이 율법의 의를 지킬 수 있으므로 우리가 행한 일은 말할 기회가 없다. 지금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한다.


방해를 받음

갈라디아 형제들이 “성령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시작은 잘했으나 누군가가 도중에 방해를 하였다.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라고 묻는다. 하나님의 율법은 진리이다(시 119:142 참조). 갈라디아 형제들이 잘 시작하여 진리에 순종하였고 처음에는 성공하였으나 후에 그들의 진로가 방해를 받았다. 왜 그러했는가?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롬 9:32).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므로 그 안에서는 넘어지는 일이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가 되신다. 그의 생명은 율법이기 때문에 그 안에 율법의 완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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