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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거치는 것”

십자가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수치의 상징이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는 것이었다. 사도는 만일 그가 할례를 전하였더면 다른 말로 하면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전했다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라고 말한다. 십자가의 거치는 것은 인간의 연약성과 죄의 고백과 어떤 선한 일을 할 수 없는 무능력의 고백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여 모든 것을 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모든 인간의 자부심에 굴욕이 된다. 인간은 자신들이 독립자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이 행할 수 있는 어떤 선행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어떤 이는 일단의 도둑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 “도덕적인 삶”을 설교할 수도 있으며 그들 자신들의 노력으로 도덕적인 삶을 살도록 권하면 잘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이와같은 설교는 그들 자신이 이미 의롭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전파하도록 하자. 인간 안에는 선한 것이 조금도 없으며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리도록 하자. 그러면 어떤 사람은 곧장 화를 낸다.


자유는 섬기는 것이고 죄짓는 것이 아님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자.” 앞의 두 장은 종 노릇, 감옥살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죄아래 갇히어 있었고 율법에 빚진 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스도의 믿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였으나 그러나 우리가 자유롭게 되었으므로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우리에게 권면하신다.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며 결코 죄를 위하여 자유롭게 된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가! 많은 신실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게 되었으므로 율법을 무시하거나 또 등한히 하고 율법을 범하는 것이 죄(요일 3:4 참조)라는 것을 잊고 있다. 육신을 섬기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않도록 권면할 때에 이것은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오용하고 율법을 범함으로 다시 종 노릇하게 되지 않도록 경고할 뿐만 아니라 이와는 반대로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고 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5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그 자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를 되새겨 생각해 보라. 우리에게 처음에 주셨던 다스리는 자유를 주신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통치권을 주셨으며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왕들이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것은 어느 그리스도인이나 다스릴 권리가 있는 유일한 대상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큰 사람은 그 자신의 심령을 다스리는 자이다. 우리는 왕들로서 우리의 부하들은 더 낮은 부류의 피조물들과 자연과 육신에서 찾을 수 있으며 우리의 동료 인간들은 아니다. 우리는 동료 인간들을 섬겨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마음 곧 하늘 궁전에 계실 때에는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종의 형체”(빌 2:5-7)를 가지게 하셨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지상에 내려 오셨을 때에도 그의 신성에는 변함이 없고 오직 그의 형체에만 변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시온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으로서 종이 되셨었다. 이것은 그가 제자들의 주요 선생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으로부터 오셨고 하나님에게로 간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계시면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알 수가 있다(요 13:3-13 참조). 더욱이 모든 구속받은 성도들이 영광 중에 나타날 때에 그리스도께서 손수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눅 12:37). 최대의 자유는 봉사―예수의 이름으로 우리의 동료들에게 하는 봉사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많은 봉사를 하는 자가 가장 높다. 인간들은 이것을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 않고 가장 천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왕중의 왕이요 주 중의 주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배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하기를 원하지 않고 또 할 수도 없는 봉사를 행하셨다.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왕들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사랑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대신하는 대치물이 아니고 율법의 완성이다. 바로 여기에서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그러므로 만일 사람이 그 이웃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만일 그 생명이 우리 안에 자유하게 되었으면 율법이 우리 안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은 모든 창조물을 위한 율법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생명이 세상을 위하여 그 자신을 주신 일에서 나타났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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